정부가 지난해 이란 다야니가(家)에게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 패한 가운데, 이 판결을 취소해달라고 영국 고등법원에 소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가 다야니 측에 730억원을 물어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21일 금융위원회는 참고자료를 통해 20일(현지시간) 영국 고등법원이 한국 정부 대(對) 다야니의 중재판정 취소소송에서 우리 정부의 “중재판정을 취소해달라”는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건의 시작은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이번 사건의 시작은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1월 부실채권정리기금(캠코)는 금융기관들로부터 대우전자(이후 대우일렉트로닉스로 사명 변경)의 부실채권을 인수한다. 이후 우리은행을 주채권은행으로 한 채권단은 세 차례의 매각 시도 끝에 2010년 4월 다야니가 대주주인 이란 가전회사 ‘엔텍합’을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다. 같은해 11월 채권단은 다야니 측이 설립한 싱가포르 특수목적회사(SPC) D&A와 총 매매대금 5,778억원에 매매계약을 체결한다. 이 때 D&A는 채권단에 578억원을 계약금을 지불했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채권단은 D&A가 총 필요자금 대비 1,545억원이 부족한 투자확약서(LOC)를 제출했다며 계약을 해지하고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매수자 측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에 D&A는 2011년 6월 서울중앙지법에 매수인 지위 인정 및 주식, 채권의 제3자 매각절차 진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하지만 2012년 2월 우리 법원은 채권단의 계약 해지가 적법하다는 취지로 이를 기각했다.
◇다야니의 반격...한국 정부 상대 ISD제기=다야니 측은 물러서지 않았다. 2015년 9월 국제중재판정부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계약금과 이자 935억원을 반환하라는 취지로 ISD를 제기했다. 이후 지난해 6월 국제중재 판정부는 다야니 측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계약금 578억원에 그동안의 이자를 포함해 총 730억원을 한국 정부가 다야니에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외국 기업이 낸 ISD에서 한국 정부가 패소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韓정부, 영국에 취소소송 냈지만 기각=이에 우리 정부는 판결 직후인 지난해 7월 영국고등법원에 취소소송 소장을 냈다. 다야니 사건은 39개 금융기관이 모인 채권단과 다야니 측의 법적 분쟁이고 정부는 상관이 없는데 다야니 측이 한-이란 투자보장협정상 ISD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또 캠코는 대한민국 국가기관으로 볼 수도 없고 캠코의 행위가 대한민국에 귀속된다고 볼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다야니 측은 싱가포르 법인인 D&A에 투자를 했을 뿐 한국에 투자를 한 것이 아니어서 한-이란 투자보장협정상 투자자로 볼 수 없고 D&A가 대우일렉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납부한 사실만으로 한-이란투자보장협정상 투자를 했다고 볼 수 없다고 논거를 냈다. 하지만 이번에 영국 고등법원은 한-이란 투자보장협정 상 ‘투자’및 ‘투자자’의 개념을 매우 광범위하게 해석해 다야니 측을 한국에 투자한 투자자로 판단해 다야니 측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이란 투자보장협정상 중재를 제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 대 다야니 측의 사건의 지난해 6월 중재판정이 확정됐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결과에 대해 긴급 관계부처 회의를 개최해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했다”며 “판결문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필요한 후속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모든 절차가 종료된 이후 관련 법령 등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세한 내용을 공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현재 우리 정부는 다른 ISD 판정도 기다리고 있어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주목된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제기한 5조원 규모의 ISD 판정,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가 제기한 1조원 규모의 ISD 판정이 대기하고 있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