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개막한 제4회 ‘늘푸른연극제 ’가 묵직한 울림을 전했다. 2016년 제1회 원로연극제를 시작으로 올해 4회를 맞이했다. 2019 늘푸른연극제는 ‘그 꽃, 피다.’라는 부제를 들고 나왔다. 원로 연극인의 예술혼과 연극계가 가야 할 새로운 지표, 그리고 뜨거운 예술혼을 ‘꽃’이란 부제에 담았다.
최근 대학로에서 만난 ‘늘 푸른 연극제’ 운영위원장인 전무송 배우는 “‘늘 푸른 연극제’ 가 나이 먹은 원로들의 축제, 즉 늙은이들의 연극제가 아니다”고 일침했다. 그는 “나이가 먹어서도 ‘늘 푸르게 움직이는 존재’가 ‘원로’이다” 며 “ ‘선배들이 늙어서도 힘차게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후배 연극인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고 내다봤다.
/사진=양문숙 기자
지난 2016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늘 푸른 연극제’는 원로 연극인들이 우리 시대 노인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힘 있게 전달한다. 이번 축제에선 개막작 ‘하프라이프’를 시작으로 ‘의자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황금 연못에 살다’, ‘이혼예찬!’, ‘노부인의 방문’ 등이 무대에 오른다.
올해 무대에 오를 작품은 공모작 총 17편 가운데 선정된 6편이다. 올해는 연출가 표재순, 작가 윤대성, 배우 김경태, 김동수, 박웅, 이승옥, 주호성, 오영수, 박봉서 등 이 참여한다.
지난해까지 공연 작품을 선정했지만, 올해 공모방식으로 바꿨다. 서현석 운영위원(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은 “원로 연극인 참여가 많아져 고루 기회를 주기 위해 공모방식으로 작품을 선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선정을 통해 3회까지 축제를 진행해왔는데, 보다 현실적으로 원로들의 작품을 모아서 선정하는 공모형식을 도입했다.
이에 대해 전무송 위원장은 “70세 이상이 원로 분들이 우리 연극계에 많다. 그 속에서 누구를 추천하고 또 누구를 선정 작에서 빼게 되면 부작용이 생겨나 공모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 이번에 모시는 배우 외에도 아직도 원로 배우가 많다. 매년 순서의 차이는 있겠지만 올해 참석 못 한 배우들은 계속 기회를 드리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줄서기나 실력 우위의 경쟁을 내세운 연극 축제가 아니다. 오랜 연륜으로 활동한 연극인들이 대표 무대를 보여주는 자리다. 전 위원장은 “모든 예술에 갈등과 경쟁이 많은데, ‘늘 푸른 연극제’ 만큼은 시기하거나 미워하는 마음 없이, 좋아하는 연극을 즐기는 분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나이를 먹으면 원로가 된다. 좋은 원로가 돼서 무대에 설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모습을 본 후배들은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한다. 후배 연극인은 원로 배우들이 치열하게 무대에 서는 모습을 통해 연극의 자세를 배우는 의미가 있다. 지금 힘들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 말이다. ”
전무송 위원장은 “‘늘 푸른 연극제’ 만큼은 시기하거나 미워하는 마음 없이, 좋아하는 연극을 즐기는 분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전무송 위원장은 “‘늘 푸른 연극제’ 를 올리면서 한 쪽으론 연극에서 멀어지는 관객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늘 푸른 연극제’는 원로 연극인들의 축제이지만 젊음의 정신으로 관객과 호흡하고 창작 의욕 등을 새롭게 선보이는 열정의 축제를 지향한다. 전 위원장은 “관객들은 옛날 배우들을 무대를 보면서 과거를 회상할 수 있지 않겠나. 정신적 깨우침이라고 할까. 연극 문화예술이 그런 마음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늘 푸른 연극제’ 를 올리면서 한 쪽으론 연극에서 멀어지는 관객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대학로가 이전 관객들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는데, 이게 결국 관객의 책임이 아니라 연극인들의 책임이다. 연극인들이 ‘돈’ 때문이란 이유만 붙일 게 아니라 계속 연극을 했었어야 한다. ”
“이렇게 ‘늘 푸른 연극제’를 통해 옛 배우들이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오르니까 ‘보자’는 마음도 생길 것 아닌가. 작년에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하니까, 관객들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내가 섰던 어느 무대를 이야기하면서 ‘잘 봐서 또 보러 왔다’ 고 말이다. 관객들에겐 과거에 봤던 작품. 배우들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은연중에 있다. 그런 관객들의 마음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늘 푸른 연극제는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축제이다. 전 위원장은 “연극이란 게 혼자선 할 수 없다. 또 어떤 이득을 얻고자 하는 게 아니다. 좋은 의미에서 함께 즐기는 축제, 행복한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57년간 연극과 함께 살아온 배우 전무송은 “모든 예술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긍정적인 마음이다”고 전했다.
“항상 연극 작업을 하려면 ‘돈’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가 생긴다. 제작비 때문에 진 빚을 갚으려면 작업 이후에도 고생이 이어진다. 그런 부담을 조금 도와줘서, 걱정 말고 무대 작업을 할 기회를 마련해 주는거다. 물론 넉넉하게‘충분히’는 못 도와주는 예산이다. 다만 선발된 원로에겐 얼마의 돈을 줘서, 연극 작업을 하는 동안엔 보람 있게 쓸 수 있게 예산을 지원해준다.”
“좋은 의미에서 즐기는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호간에 작업할 때, 아팠던 기억, 힘들었던 기억을 내려 놓고,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거다. ‘그런 마음으로 연극을 하자’ 가 기본 의도이다. 연극은 우리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연극으로 밥 벌어먹겠다고 하는 게 아니다. 그걸 해서 행복한 게 본래의 마음이다. 이런 마음이 전체 연극계에 퍼지면, 작업 하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고생했던 마음들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늘 푸른 연극제’ 기본의 마음이다.”
연극계에 평생 몸담은 원로 배우들이 내놓는 작품 속엔 ‘연극 혼’이 담겨 있다. 전 위원장은 ‘원로’의 정의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그는 “늙었다고 권위 내세우는 원로는 불쌍해보이고 추해보인다” 며 “오랜만에 동료들을 만나서 즐기면서 작업을 하는 연극인이 ‘원로’이다‘고 말했다. 이어 ”후배들이 아주 신나게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고, 훌륭한 예술활동을 하는 것에 박수 쳐주는 이가 진정한 원로이다”고 소견을 전했다.
유치진의 연극아카데미 1기생으로 시작한 전무송은 1964년 ‘춘향전’으로 데뷔 후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대를 지켜왔다. ‘하멜태자’ ‘고도를 기다리며’ 등을 비롯해 TV드라마 ‘원효대사’ ‘마의태자’, 영화 ‘만다라’ 등 많은 화제의 작품을 남겼다.최근 데뷔 50주년 기념작 ‘보물’에 이어 ‘세일즈맨의 죽음’ 등으로 관객을 만났다. 2018년 제8회 아름다운예술인상 시상식에서 연극예술인 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50년 이상을 연극에 매진할 수 있었던 그의 원동력은 ‘긍정적인 마음’에 있었다. 모든 예술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 긍정적인 마음이다”고 설파하기도 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길이 보인다면,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벽’만 보일 뿐이다. ‘가능해’ 란 마음 속에서 나오는 그게 ‘길’이다. 그런 마음으로 이 연극 작업을 하면 좋은 결과가 생긴다. 그건 틀림없다. 흔히들 이러 이러한 이유로 주춤거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그런 생각을 하는 만큼 갈등이 생기고 힘들어지는 게 ‘연극 작업’이고 인생인 것 같다라.”
한편 제4회 늘푸른연극제 ‘그 꽃, 피다’는 오는 22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아트원씨어터 3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며, 개막작인 표재순 연출의 연극 ‘하프라이프’는 25일, 26일 양일간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공연된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