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부자들 지갑 닫았다

■서울옥션·케이옥션 경매 분석
올 낙찰총액 30%↓ 1,394억
1년만에 2,000억시장 무너져
글로벌경기 둔화에 매수 주춤
김환기 작품만 '나홀로 반짝'
신진작가 등 발굴 적극 나서야


올해 미술품 경매시장의 낙찰 총액이 전년 대비 30%나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악화로 부자들의 지갑마저 닫힌 결과로 볼 수 있어 미술계의 우려가 상당하다.

서울경제가 22일 양대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올해 경매 전체를 분석한 결과 낙찰총액은 약 1,394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2,003억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2,000억원의 벽을 넘었던 미술품 경매시장이 불과 1년 만에 30%(609억원)나 쪼그라든 것이다.

국내에서 운영되는 미술품 경매회사는 총 12곳 이상이지만 양대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시장 점유율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간하는 ‘미술시장실태조사’ 기준으로 약 90% 수준이라 전체 시장의 지표로 볼 수 있다. 미술 시장에 빨간불이 들어온 가운데 유일하게 김환기에만 청신호가 켜졌다. 총 58점이 경매에서 거래돼 낙찰총액 24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11월 크리스티 홍콩경매에서 약 132억5,000만원에 낙찰된 김환기의 ‘우주’ /사진제공=크리스티코리아

◇미술시장 찬바람 쌩쌩= 서울옥션은 올해 각각 4번의 메이저경매와 홍콩경매 외에 거의 매주 열린 온라인 경매 등 총 79회의 경매를 개최한 결과 낙찰총액 822억8,600만원을 거둬들였다. 이는 총 36회의 경매에서 1,285억원 이상을 벌었던 지난해의 64% 수준이다. 가장 비중이 큰 홍콩경매 실적이 지난해 약 664억원에서 423억원으로 36.3% 급감한 것이 치명적이었다. 국내 메이저경매도 30% 이상 하락해 위축된 국내 경기를 반영했다. 찬바람을 맞은 것은 케이옥션도 마찬가지다. 케이옥션은 6회의 메이저경매를 포함해 총 64회의 경매를 열었고 571억원의 낙찰총액을 거뒀다. 몸집을 줄여 기민하게 대응했지만 지난해 약 718억원에서 146억원(20%) 이상 줄었다.

원인은 글로벌 경기 둔화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 양대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올 상반기 낙찰총액은 각각 22%와 10% 감소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해외 경제전문 매체들은 “경기가 위축된 지금이 좋은 미술품을 사고자 하는 컬렉터들에게는 매수 적기(hunting time)”라고 하지만, 미술 시장만큼이나 구매여건도 좋지 만은 않은 상황이라 결국은 시장에서의 작품 순환이 원활하지 않다. 경기가 좋아지면 더 높은 값에 팔 수 있는 그림을 당장 헐값에 매도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경매가 미술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전 세계적 현상으로, 세계 경매시장은 지난 2017년까지 20년간 456% 성장해 거래 총액 32조 원 이상을 이뤘다. 그 사이 주춤했던 것은 2008년 말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촉발한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2년 정도였다. 하지만 미술시장 10년 주기설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이 지난해 말부터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와 세계 주요2개국(G2)인 미·중간 무역갈등 등의 여파로 시장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인 홍콩에서 민주화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분위기가 침체한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미술시장연구소를 이끄는 서진수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2018년 하반기부터 글로벌아트마켓의 실적이 저조한 것은 세계 경제성장률이 저조한 탓”이라며 “이 때문에 미술시장에서 자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데다, 피카소나 워홀 등 스타 작가의 최고가 경신 같은 호재가 낙수효과를 일으켜야 하는데 그런 심리적 호재도 없다”고 분석했다.

김환기의 붉은점화 ‘무제’가 지난 5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약 72억원에 낙찰됐다. 올해 국내 경매사가 거래한 작품 중 2번째로 높은 가격이었다. /사진제공=서울옥션

◇홀로 빛난 김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환기는 올해 홀로 빛났다. 지난달 크리스티 홍콩경매에서 1971년작 ‘05-Ⅳ-71 #200’, 일명 ‘우주’가 약 132억5,000만원에 팔려 국내 미술품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국내 경매사가 거래한 올해 최고가 작품은 서울옥션이 지난 3월 말 홍콩경매에서 판매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으로 약 72억5,000만원(5,000만 홍콩달러)이었다. 그 뒤를 김환기가 이었다. 5월 홍콩경매에서 김환기의 ‘무제’가 약 72억원에 낙찰됐다. 이는 경매에서 팔린 김환기 작품 중 3번째로 높은 가격이다. 케이옥션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 또한 김환기로, 1월 경매에서 1970년작 점화가 17억원에 낙찰됐다. 양사에서 올해 거래 성사된 김환기 작품 58점의 낙찰총액은 약 249억원, 낙찰률은 70%였다.

‘미술계의 삼성전자’라 불리는 김환기는 지난 2013년 이후 미술시장 평균 점유율 15%를 보이고 있으며 최근 그 비중이 더 늘어나 올해는 약 18%로 올라섰다. 국내 미술품 최고가 10점 중 9점이 김환기의 그림이다. 김환기 외에는 주력할 대표급 작가가 부재하다는 방증이며, 백남준 등 저평가된 한국작가의 위상 제고와 신진작가 발굴 등 미술시장의 활성화가 요구되는 이유다.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대략 4,000억원 대로 집계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들의 미술시장 평균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0.1% 수준인데 반해 우리는 2,000조 원에 달하는 GDP 규모의 0.02%에 불과하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르네 마그리트 ‘세이렌의 노래’. 지난 3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약 72억5,000만원에 낙찰돼 올해 국내 경매거래 최고가 작품이 됐다. /사진제공=서울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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