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야당 대표들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석패율제 포기, 민생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개회 등 합의안을 발표하고 있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왼쪽부터),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대안신당 유성엽 창당준비위원장.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을 뺀 3+1 협의체(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에서 “석패율제를 포기하겠다”고 밝히면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에 대한 논의가 다시 급물살을 타게 됐다. 민주당 내에서는 “속이 시원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4+1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채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와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법안 처리를 강행할 분위기다.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렸던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는 이인영 원내대표가 주재했다. 이해찬 대표가 한중일 정상회의를 위해 방중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러 가면서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 대표에게 “예산부수법안·비상입법사항 등 민생법안을 처리해달라”고 당부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의 근심은 깊었다. 패스트트랙 법안을 반대하는 한국당을 제외한 4+1 협의체와 선거법에 합의가 있어야 본회의에서 주요 법안들이 처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3+1 협의체를 이끄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유성엽 대안신당 창당준비위원장이 “대승적으로 석패율제를 포기하기로 합의했다”며 “비례대표 의석수도 경우에 따라서는 (현재와 같은) 253대47로 손을 안 댈 수 있다”고 발표했다. 4+1은 이어 이날 오후 합의한 선거법과 검찰개혁법안을 발표했다. 이로써 선거법에 막혔던 국회 상황이 한 번에 뚫렸다.
3+1의 결단은 그간 주장한 요구의 대부분을 거둬들이는 수준이다. 사실상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여당인 민주당에 맞췄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선거법 원안은 국회의원 정수 300석에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이다. 비례대표 47석은 모두 정당득표율로 비례대표 의석을 받을 총수를 정해놓고 지역구 의석을 빼고 남은 50%를 가져간다. 이른바 연동률 50%다.
이 같은 안은 연말 정기국회 종료시기가 오자 급변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11월20일 “선거법 개정을 막겠다”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패스트트랙 법안이 끓었고 선거법이 먼저 수면 위에 올랐다. 11월29일 한국당이 본회의에 오른 199개 법안에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을 통한 의사진행 방해)를 걸면서 선거법 처리가 어려워졌다.
상황이 복잡해지자 민주당은 “비례대표 50석 가운데 30석(상한선·Cap)만 연동형을 적용하자”고 4+1에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선거법의 구도가 더 명확해졌다. 공조한다지만 법 개정은 129석을 가진 민주당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을 제외한 3+1은 30석에 ‘캡’을 다는 데 동의하는 대신 석패율제도 도입을 받으라고 역제안했다. 민주당은 다시 거부했다. 석패율제는 지역구에서 근소한 차이로 2위를 해 아쉽게 떨어진 후보자를 비례대표로 구제하는 제도다. 군소정당으로서는 진보진영과 후보를 단일화하기보다 최선을 다해 선거를 완주할 유인이 커진다. 4+1이 흔들리는 사이 한국당이 비례의석만을 위한 ‘비례한국당’을 만들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선거법의 구도는 더 복잡해졌다.
선거법 자체가 무산될 위기가 오자 3+1은 석패율제 포기는 물론 비례의석도 현재와 같은 47석으로 고정하고 30석에 대해서만 연동형을 적용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최대 수혜 정당인 정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 의석 30석이 생기기 때문에 현재 정당득표율 7%만 가정해도 의원 수는 더 늘어난다.
4+1의 선거법 합의로 패스트트랙 법안은 당장이라도 한국당을 제외한 채 본회의를 열어 처리할 힘이 생겼다. 특히 4+1은 이날 검찰개혁법안의 쟁점인 기소심의위원회를 두지 않기로 하며 단일안을 냈다. 검찰개혁법안은 한국당을 다시 궁지로 몰아넣을 카드다. 선거법 합의 과정에서 한국당의 장외집회 등 역공에 거대 여당과 군소정당이 ‘의석 나눠 먹기’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검찰개혁법안을 밀어붙이면 반대로 한국당을 개혁거부 세력으로 낙인 찍는 역공이 가능하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우리 입장에서는 공수처도 엮여 있기 때문에 선거법을 할 수밖에 없다”며 “선거법에 검찰개혁법안까지 막기에는 한국당도 지칠 것”이라고 말했다.
/구경우·하정연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