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인은 지난 18일 개봉한 영화 ‘시동’에서 의욕 충만한 반항아 상필 역을 맡아 캐릭터 변신에 성공했다. ‘시동’은 정체불명 단발머리 주방장 거석이형(마동석)을 만난 어설픈 반항아 택일(박정민)과 무작정 사회로 뛰어든 의욕 충만 반항아 상필(정해인 분)이 진짜 세상을 맛보는 유쾌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정해인이 연기한 상필은 하루빨리 돈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캐릭터다. 무엇 하나 잘하는 것 없이 어색하지만 의욕만 충만해 글로벌 파이낸셜의 막내로 들어가 거친 사회생활을 맛보게 된다. 다정한 눈빛, 잔잔한 미소 등 기존의 모습과는 색다른 정해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작품을 보는 재미는 충분하다.
10대 반항아를 연기한 정해인의 실제 10대는 큰 말썽을 피우진 않았지만 ‘무엇이든지 어중간했다’고 한다. 특별나게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잘 놀지도 못했다. 그래도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던 ‘착한’ 아들이었다. 빨간 뿔테가 유행했을 때 유행에 민감하게 따라간 패셔니스트이기도 했다. 정해인은 “그래서 제가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하는 ‘상필’이가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시동’ 상필이는 발버둥 치며 뭐든지 하려고 하는 아이이다. 형들이랑 있을 때 치기 어린 허세를 부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런 철없는 아이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동’에서는 정말 제가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해봤던 것 같다. 그만큼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현장이었다.”
영화 속에서 상필은 홀로 자신을 키운 할머니(고두심 분)의 손자로 등장한다. ‘상필’을 연기하며 정해인은 할머니가 가장 많이 생각났다고 밝혔다. 감정과잉이 되지 않게 스스로를 점검했다는 그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 ‘상필’을 연기할 때 감정이 과하게 몰입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정말 많이 생각이 난 작품이다. 특히 고두심 선생님께서 정말 마음을 울리는 연기를 하시는 분이니까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냥 ‘밥 먹어’라는 한 마디에도 눈물이 났다. 고두심 선생님의 ‘가지 마’ 한 마디 때는 너무 몰입이 됐다. ”
정해인이 상필에 잘 녹아들을 수 있었던 건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박정민의 역할이 컸다. 박정민의 팬을 자처한 정해인은 “나도 연기를 꾸준히 또 묵묵히 한다면, 언제쯤 ‘저 ’파수꾼‘에 나온 박정민, 이제훈 선배들과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란 막연한 희망이 있었는데 이번에 호흡을 맞춰서 기뻤다”고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올해 드라마 ‘봄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그리고 ‘시동’에 이어 예능 프로그램 ‘정해인의 걸어보고서’ 등 다방 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정해인. 바쁘게 쏟아지는 일정에 ‘힘들다’는 아우성도 낼 법 하건만, 그는 ”함께 선택한 작품이고, 함께 만들어가고 싶었던 작품이기에 누구에게 투정을 부리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번 아웃’이 왔던 시기를 언급하며, “작년 한해 돌아보며 사람에게 건강과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게 됐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전했다.
필모그래피가 계속 쌓여갈수록 정해인은 ‘책임감’이 커진다고 했다. 연기에 대한 책임감 외에도, ‘말에 대한 책임감’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정해인의 배우론은 “배우가 어느 정도의 서비스직이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책임감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기만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신중하게 행동하고 말해서, 작품에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까지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젠 TV나 스크린에 제 모습이 나오면 신기하다는 생각을 넘어서 연기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작품에서 더 큰 배역을 하면서 책임감이 커진 게 사실이다. 여러 가지 연기 외적으로 할 것들이 있더라. 배우가 같이 분위기를 만들고, 즐거운 환경을 조성하는데 일조를 해야 한다는 걸 많이 느꼈다. 이런 감정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때 배웠다. 자기중심을 잡으면서, 건강하게 오래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고자 한다.”
[사진=FNC ]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