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규 금융부
“20년 넘게 금융권에 종사하면서 여러 정책을 봤지만 아예 대출을 금지(15억원 초과아파트)하는 것은 처음 봅니다. 전쟁 때나 나올 법한 대책이죠.”
최근 금융권에 오래 종사한 한 인사의 푸념이다. 다른 규제도 별반 다르지 않다. 12·16 금융 부문만 봐도 △9억원 초과 주택 담보인정비율(LTV) 20% 적용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개인별 적용 △일시적 2주택자의 기존 주택 처분 기한 축소(2→1년)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고 규제별 적용 시점도 하나하나 따져봐야 한다. 9억원 초과 주택 보유자는 전세대출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목동 등지로 전세 이사를 고려한 사람은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등 선의의 피해자도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대책을 꼼꼼히 살펴보던 실수요자들이 ‘규제가 왜 이렇게 많고 복잡하나’ ‘정책이 괴물이 됐다’며 울화통을 터뜨리는 이유다.
부동산 급등의 근본 원인은 시중에 넘치는 돈이 갈 곳이 부동산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업을 적폐로 보는 정책 기조에 기업은 국내 투자보다는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고 여전한 ‘그림자 규제’에 굵직한 스타트업의 등장도 찾아보기 힘들다. 과잉 규제로 자본시장으로 돈이 흘러가기도 어려운 형국이다. 기업 해외직접투자(FDI)는 2·4분기에 지난해보다 13.3% 뛰며 150억달러를 돌파, 2분기 연속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우리 유니콘 기업은 9개에 그쳐 미국(201개)·중국(101개)에 한참 뒤졌다. 그마저도 규제가 덜한 화장품·게임 등의 분야에서만 나왔다.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금융당국은 은행의 신탁 판매에도 총량제를 실시해 시장 성장 가능성을 제한했다.
결국 부동산을 잡으려면 복잡한 대출 규제로 국민 피로감만 높일 게 아니라 거시적 차원에서 돈의 물꼬를 기업·자본시장으로 돌리는 근본적 처방전이 필요하다. 물론 정부는 그런 정책을 펴고 있다고 항변할 수 있지만 시장 평가는 냉정하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대출금지에 대해 “강력한 정책으로 시장의 기대심리를 꺾을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돈의 흐름을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반기업 정서의 극적인 반전, 혁신 창업기업을 키우기 위한 상상력을 뛰어넘는 파격적 정책, 자본시장을 적대시하지 않는 강력한 신호가 새해에는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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