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대화 물꼬' 텄지만...수출규제·지소미아 빅딜 없었다

■한일 정상회담
文 "잠시 불편함 있지만 떨어질수 없는 사이"
아베 "한국 측 책임으로 해결책 제시해야"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4일(현지시간) 한중일 협력 20주년 행사가 열리는 중국 쓰촨성 청두 두보초당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오후 중국 청두에서 1년3개월 만에 정상회담을 가졌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이에 맞선 우리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선언으로 양국 관계가 파국 위기를 맞은 후 처음 열린 회담이었다.

우리 정부가 지난달 지소미아를 조건부 연장하며 한일갈등을 ‘임시 봉합’한 가운데 양 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해묵은 갈등을 해소하는 ‘빅딜’에 합의할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일 양국은 이날 정상 간 ‘진솔한 대화’를 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을 뿐 갈등의 근원인 강제징용 문제를 놓고는 여전히 인식차를 드러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양 정상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는 공감대를 보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이날 회담은 중국 청두 샹그릴라호텔에서 예정된 시간(30분)을 초과해 45분간 진행됐다. 회담에 앞서 양 정상이 웃으며 악수하는 등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방콕에서의 만남도 만남 그 자체만으로 우리 양국 국민들과 국제사회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며 “우리는 그 기대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양 정상은 지난달 4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3 정상회의 직전 문 대통령의 즉석 제안으로 환담을 나눈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이를 환기시키며 “지난 만남에서 총리님과 나는 한일 양국 관계 현안은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고 그에 따라 현재 양국 외교당국과 수출관리당국 간에 현안 해결을 위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아베 총리에게 지난 7월1일 이전 수준으로 일본의 수출규제가 회복돼야 한다며 결단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또 “일본과 한국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교역과 인적 교류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상생 번영의 동반자”라며 “잠시 불편함이 있어도 결코 멀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의 모두발언은 상대적으로 짧았다. 아베 총리는 “일한 양국은 서로에게 중요한 이웃이다. 그리고 북한 문제를 비롯해 안전보장에 관한 문제는 일본과 한국, 그리고 일본·한국·미국 간의 공조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6월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양 정상이 8초간 어색한 악수를 나눴던 것에 비하면 이날 만남은 비교적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4일(현지시간) 중국 쓰촨성 청두 세기성 샹그릴라호텔에서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두 정상은 △강제징용 해법 도출 △수출규제 해소 △지소미아 연장 등과 관련해 기대를 모았던 ‘일괄 타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한일 양국의 강제징용 문제 해법으로 제안한 ‘문희상 안’을 두고 국내에서 반대 여론이 높은 점도 이날 회담 결과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한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주장은 이날도 평행선을 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아베 총리는 회담을 마친 후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문 대통령에게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강제징용공)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전했다”며 “일한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돌리는 계기를 한국 측이 만들도록 요구했다”고 밝혔다. 한국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다만 “문 대통령과는 대화에 의한 해결의 중요성을 확인했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일본은 양 정상의 담판을 나흘 앞둔 지난 20일 반도체 소재인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규제 완화 조치를 하는 성의 표시를 했으나 청와대는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을 즉각 밝히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일 정상회담이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일부 진전은 있는 것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청와대가) 냈었다. 그 정도 선이라고 봐주시면 된다”며 “문 대통령이 일본이 자발적 조치를 한 것은 나름의 진전이고 대화를 통한 해결의 성의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씀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선심성 조치’를 내놓으며 회담의 주도권을 쥐려 한다는 청와대 내부의 불쾌감도 엿보였다. 양국 간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지면서 이날 오전 현지 외교가에서는 양 정상의 ‘빈손 귀국’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은 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날 정상회담에서 대북제재를 논의한 것을 놓고도 ‘한중러’와 ‘미일’이 이견을 보이고 있다며 대립 구도를 부각시켰다. 요미우리신문은 “앞으로 제재완화를 지지하는 중국·러시아·한국과 제재유지를 주장하는 일본·미국의 ‘3대2’ 구도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 언론발표문에서도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발사가 안보리 결의 위반이며 지역의 안전보장에 대한 심각한 위협임을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청두=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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