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개선 캠페인인 TDR(Tear Down and Redesign)의 효과가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이미 3개 과제를 조기 완료하며 재무적 성과를 거뒀습니다.”
현대상선(011200)의 2020년도 영업전략회의가 열린 지난 17일. 배재훈 현대상선 사장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렸다. 채권단에서 보낸 최고경영자(CEO)가 성과를 낼 수 있을까라는 현대상선 내외부의 따가운 시선을 불과 9개월만에 깔끔하게 씻었다. 미주·구주·동서남아·중국본부 등 해외법인에서 근무하는 주재원 30여명 등 총 100여 명의 임직원이 참석한 회의에서 배 사장은 현대상선의 재기를 확신했다.
배재훈 현대상선 사장. /사진제공=현대상선
현대상선이 묵은 ‘녹’을 털어내며 손익 개선을 가속하고 있다. 성과의 밑거름은 지난 2·4분기부터 시행하고 있는 비용개선 캠페인인 TDR(Tear Down and Redesign)이다. TDR은 급변하는 해운 업황에도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낭비 요소를 제거하는 등 체질 개선을 유도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캠페인이다. 이미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배 사장은 영업전략회의에서 “컨테이너 기기 요율 현실화, 특수 컨테이너 배분 방식 변경 등으로 50억원 이상의 경제 효과를 거뒀다”며 “영업관리 단순 입력 업무도 중국 청두 ‘다큐멘테이션 센터’로 이관하며 업무 효율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배 사장은 지난 3월 취임 이후 수익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임직원들에게 “선복량을 채우는 데 급급하지 말고, 덜 채워도 좋으니 이익에 중심을 둬야 한다”며 채산성이 나쁜 화주들을 정리하는 등 노선 합리화를 주문했다. 미중 무역분쟁과 중동·홍콩의 정세불안, 브렉시트 등 글로벌 교역 환경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보다 명확한 자구(自救) 노력을 하겠다는 것이다.
취임 후 배 사장이 내놓은 TDR의 효과는 3·4분기 실적에서 바로 나타났다. 현대상선은 지난 3·4분기 연결기준 매출 1조4,477억원, 영업손실 466억원의 경영실적을 기록했다. 적자를 면하지는 못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적자폭이 765억원이나 줄었다. 전분기인 2·4분기보다는 600억원 가량 감소했다.
이번 실적 개선에 가장 큰 요인은 TDR의 하나로 추진된 ‘50달러’ 캠페인이었다. 1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 당 관리쪽에서 20달러를 절감하고 영업에서 30달러 수익을 증대하는 방식으로 1TEU 당 총 50달러의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이 이 캠페인의 목표다. 현대상선 한 관계자는 “(50달러 캠페인은) 글로벌 선사들의 공급과잉과 운임 경쟁으로 컨테이너 운임 종합지수(SCFI)가 10% 급락한 가운데 손실을 줄일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고 말했다.
고수익화물 유치 전략도 한몫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까지 물동량 확보에 주력했지만, 최근에는 운송원가에 비해 매출이 적어 수익성이 없는 화물을 제한하고 있다. 매출원가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물비를 낮춘 것이다.
현대상선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재기의 기회를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 2020 환경규제, 2만3,000TEU급 초대형선 투입, 해운 동맹 ‘디 얼라이언스(THE Alliance)’에서의 활동이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특히 디얼라이언스는 그간 전략적 제휴에 그쳤던 ‘2M’(머스크·MSC)의 한계를 메울 수 있는 해운동맹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대상선은 선복(화물적재 공간)을 공유하는 2M 정식 회원이 되지는 못하고, 필요할 때 선복을 매입하거나 교환할 수 있는 ‘불완전’ 회원이었다. 반면 디얼라이언스는 양측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지난해 주문한 초대형 컨테이너선(2만3,000TEU급) 20척 중 12척을 내년 4월부터 유럽 노선에 투입할 예정”이라며 “상대적으로 유럽 노선이 약한 디얼라이언스 입장에서는 현대상선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활용해 유럽 노선 경쟁력을 강화하고, 현대상선은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동희기자 dwis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