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앙된 檢 "사전검열 중대 독소조항에 수사 중립성 훼손"

[검찰수사 무력화하는 공수처 합의]
■법조계 반응
"단순수정범위 넘어선데다
법안개정도 절차상 문제 심각
수사 독립성· 기밀누출 위험 커
공수처 견제 장치도 없어" 부글
법조계도 "위헌성 짙다" 지적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0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공수처 설치 등에 대해 “국회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답하고 있다./서울경제DB

25일 검찰이 여야 ‘4+1(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합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은 당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지정돼 있던 법안에 없던 조항이 새로 추가되면서 검찰의 고위공직자 수사가 거의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대검은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공수처 도입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전제하는 등 국회 결정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공수처 도입, 검경수사권 조정 등에 대해 “국회의 의사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합의안에 ‘중대한 독소조항’이 추가되는 등 단순 수정의 범위를 뛰어넘어선 데다 법안 개정 절차도 절차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일선 검사들 역시 헌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공수처가 헌법기관인 검찰을 사실상 지휘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 수사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날 대검찰청은 출입기자단에 보낸 메시지에서 공수처에 수사착수를 보고하게 될 경우 정치 세력의 개입으로 수사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강도 높게 쏟아냈다. 검찰은 ‘다른 수사기관이 범죄 수사 중 고위공직자 범죄를 인지했다면 이를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는 내용을 규정한 수정안 24조(다른 수사기관과의 관계)를 권력형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의 손발을 묶는 가장 큰 독소조항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압수수색 전 단계인 수사착수부터 검경이 공수처에 사전보고하면 공수처가 검경으로부터 입맛에 맞는 사건을 이첩해 과잉수사를 하거나, 반대로 사건을 가로채 ‘뭉개기’ 수사, 부실수사를 할 수 있다”며 “법무부·청와대에도 수사를 사전보고하지 않는 상황에서 공수처에 대한 사건 통보는 수사검열일뿐만 아니라 청와대, 여당의 수사정보 공유로 이어져 수사의 중립성을 훼손하고 수사기밀을 누설할 위험이 크다”고 비판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도 “첩보는 물론 사건도 (공수처에) 넘겨야 하는 마당에 어느 검찰이 고위공직자 문제와 연계될 수 있는 사건을 수사하겠느냐”며 “공수처가 수사를 하겠다 하고 안 하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할 것이냐”고 우려했다.


대검은 공수처의 헌법적 위상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다. 공수처는 중요사안에 대한 수사를 하는 ‘단일한 반부패기구’일뿐, 전국 단위의 검찰·경찰의 고위공직자 수사 컨트롤타워나 상급기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검 관계자는 “공수처가 검경의 수사착수 내용을 통보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며 “공수처, 검찰, 경찰은 각자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고 못 박았다. 공수처가 헌법적 근거가 없는 조직이라는 점을 에둘러 비판한 셈이다. 현재 검찰 조직의 구성이나 지위는 법원과 달리 헌법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하지만 검찰총장 임명, 검사 영장 등은 언급하고 있어 검찰은 ‘헌법상 영장청구권자’ ‘헌법상 필수기관’ 정도로 해석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수정안 24조에 대해 헌법에 어긋날 소지가 다분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차장검사 출신인 김종민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고위공직자 범죄를 입건하는 즉시 공수처에 보고하도록 규정한 것은 헌법에 근거가 없는 공수처가 헌법기관인 검찰에 대해 상위기관으로서 지휘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라며 위헌성이 짙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필요하다면 위헌법률심판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수정안이 통과되면 공수처와 검찰 간 갈등이 수사를 통해 표면화하면서 사회적 혼란이 가중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검찰은 공수처 검사를 직권남용 등 혐의로, 반대로 공수처는 검사를 수사하는 방식으로 ‘권력다툼’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경우에도 검찰이 공수처 검사를 입건하는 순간 이를 공수처에 통보하고 나아가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상 공수처 검사나 수사관에 대한 검찰의 견제수단이 전무하다는 검찰의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는 공수처 수정안 조항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빗발치고 있다. 대통령이 지명한 ‘친여권’ 성향의 공수처장이 임명될 경우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불가능해지고 반대세력에 대해서는 선택적 수사·기소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당은 공수처 도입 이유로 ‘권력기관 간 상호 견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24조 추가로 수사정보와 사건 이첩의 의무화가 강제화되면 공수처의 ‘독주’를 견제할 수단이 부재하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한 검찰 관계자는 “4+1안이 현실이 되면 현재 검찰에서 진행하고 있는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청와대 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 등 정권을 겨냥한 수사는 불가능해지는 것”이라며 “고위공직자를 수사하겠다는 목적으로 출범한 공수처가 정작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는 유명무실해지는 주객전도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사와 재판 경력 없이도 공수처가 정한 ‘조사업무의 실무’를 5년 이상 수행한 경력이 있는 사람을 공수처 수사관이 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논란이다. 수정안에 따르면 공수처 수사관은 △변호사 자격을 보유한 사람 △7급 이상 공무원으로서 조사·수사업무에 종사했던 사람 외에도 △수사처 규칙으로 정하는 조사업무의 실무를 5년 이상 수행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 포함됐다. 검찰 일각에서는 세월호특조위 등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 변호사들을 합류시키기 위한 규정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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