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KT(030200) 차기 최고경영자(CEO)에 내정된 구현모 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사장)은 역대 CEO 중 가장 어려운 경영 환경을 헤쳐가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네트워크망을 구축한 뒤 수년간 손쉽게 돈을 벌던 과거 통신업의 시대가 저문 가운데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5세대(5G)에서 수익모델을 찾아야 하고,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유료방송 시장 마저 국내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등장과 사업자 간 합종연횡으로 주도권을 지키는 게 결코 만만치 않다. 규제에 묶여 성장판이 닫힌 케이뱅크 정상화도 쉽지 않은 과제다. 중장기적으로 인공지능(AI) 회사로 탈바꿈하기 위한 기반 마련까지 구 내정자에게 KT의 미래가 달린 셈이다.
29일 정보통신기술(ICT)업계에 따르면 구 내정자는 가장 먼저 임직원들과 소통과 나서는 한편 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조직 안정화에 나설 전망이다. 연말연시에 CEO 교체기를 맞아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다잡고,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식으로 구현모호(號) 출범 전까지 최적의 진용을 갖추기 위해서다. KT는 지난주부터 임직원 성과 입력과 상급자 면담을 진행해 다음 달 중순 고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구 내정자가 KT 내 최대 조직인 커스터머&미디어부문을 이끌어온데다 정통 KT맨으로서 이미 충분히 조직 면면을 잘 아는 만큼 1월 중 조직개편과 임직원 보임 등 안정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KT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KT를 만든 경영진 중 한 사람이 구 내정자여서 당장 큰 변화를 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구 사장의 당면 과제는 단연 5G다. 세계 최초 상용화의 영광을 실질적 성과로 이어가야 하는데 여건은 녹록지 않다. 마케팅비용과 설비투자(CAPEX)에 많은 돈을 쏟고 있지만 정부의 통신비 절감 대책과 이통사 간 요금 경쟁에 지난 3·4분기 가입자당 무선매출(ARPU)은 3만1,912원으로 전년동기대비 0.4%포인트 낮은 상태다. 분기별로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지금처럼 일반 소비자들이 롱텀에볼루션(LTE)과 5G 간 서비스 차별화를 체감하지 못한다면 ARPU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 실감 미디어를 비롯한 킬러콘텐츠를 발굴 해야하고 기업간거래(B2B) 시장에서는 자율주행과 스마트팩토리 등 제조업 혁신과 수익을 모두 이끌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미디어·콘텐츠 분야에서는 밖으로는 넷플릭스, 디즈니 등 글로벌 OTT와 경쟁하고 안으로는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키운 LG유플러스, SK텔레콤과 맞서야 한다. KT도 OTT ‘시즌’을 출범했고, 합산규제 해소에 따라 케이블방송 딜라이브 인수를 재추진할 수 있지만 당장 전력화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인터넷은행특례법이 통과되면 바로 케이뱅크 정상화와 금융+ICT 융합에도 나서야 한다. AI 기업으로의 DNA 전환도 간단치 않다. 글로벌 각국의 무수한 경쟁자들이 AI 주도권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KT가 어떤 차별화를 이뤄낼지 비전과 더불어 강력한 실행력이 구 내정자에게 요구된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