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해에 두 번 새해를 맞는다. 같은 해를 두 번 시작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고 새해 인사를 두 번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못 지킨 새해 결심을 새로 할 기회가 있다. 휴일도 두 번 있고 새해 소원을 두 배로 빌 수 있으니 싫어할 일은 아니다. 모름지기 밝은 면을 보는 편이 더 행복한 법이다.
‘왕오천축국전’을 쓴 신라승 혜초가 남긴 시 몇 수가 지금까지 전해지는데, 이 시는 혜초가 서번(토번)으로 가는 당의 사신을 만나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그대는 서번으로 가는 길이 멀다 한탄하고, 나는 동으로 가는 길이 길다 탄식하네/길은 거칠고 봉우리에는 큰 눈 쌓였는데, 험한 골짜기에는 곳곳에 도적이 설치네/새는 날아가다 험준한 절벽에 놀라고, 사람은 걸어가다 좁은 다리 건너기 어렵네/평생 눈물 흘린 적 없건마는, 오늘 천 줄기 눈물이 흐르네’
혜초가 천축으로 간 8세기는 고구려 유민 출신의 당나라 장수 고선지가 파미르고원까지 진출한 무렵이었다. 혜초는 오천축(五天竺)을 거쳐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까지 갔으니 파미르고원에서 서번으로 가는 당의 사신을 만났을 때 지은 시가 아닐까 싶다. 혜초보다 100년 앞서 천축을 다녀온 당나라 승려 현장법사에 의하면 천축에 이르기까지 거쳐 간 서역 국가만도 35개국이었다. 혜초가 신라에서 당~천축~중앙아시아로, 다시 당으로 돌아간 길은 대항해 시절 대서양이나 태평양을 건너는 길만큼이나 어렵고 험난한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지난 한 해 우리는 동해의 파도처럼 계속되는 고난과 역경을 헤치며 살아왔다. 국제정세는 급변하고 있고, 한때 희망을 보였던 평화의 길은 더욱 멀어졌다. 주변국과의 갈등은 심화되고 해결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내부 갈등은 더욱 심해져 오가는 말 속에는 칼날이 번뜩인다. 부동산 가격은 오르고 양극화는 심해지고 출산율은 더 떨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부르짖고 있지만 막상 그에 걸맞은 성과는 없다.
그러나 영원히 계속되는 고난은 없고 극복하지 못할 역경은 없다. 혜초가 파미르고원에서 눈물을 쏟았지만 그는 결국 당으로 돌아가 새로운 불교의 종사가 됐다. 새해를 맞아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을 드려본다. 미중 무역분쟁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영국과 유럽연합(EU)은 원만하게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를 마무리 짓기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평화의 길로 나오기를, 이웃 나라들과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갈등을 해결하기를, 내부의 갈등은 밝은 미래를 향한 협력으로 대체되기를. 현명하게 판단하고 신중하게 결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역경에 굴하지 않는 용기를 가지기를.
긴말 줄여 한마디만 한다면,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마디 더 한다면, “받은 복이 적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또 한 번의 새해인 설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