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회장/로이터연합뉴스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당국의 감시망을 뚫고 극적으로 일본을 탈출한 가운데 레바논 정부가 곤 전 회장 탈출 직전 일본에 송환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곤 전 르노·닛산얼라이언스 회장이 보석 상태에서 일본을 빠져나가자 그가 비판해온 일본의 수사·사법제도가 국제사회에서 다시 한번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는 모습이다. 국제형사기구(인터폴)는 곤 전 회장에 적색수배를 내리고 레바논 측에 체포영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소식통들을 인용해 지난해 12월20일 스즈키 게이스케 일본 외무성 부상이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방문했을 때 레바논 정부가 곤 전 회장의 송환을 강력히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가디 코우리 레바논 외교부 정무관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송환 요구 사실은 인정했지만 탈출 계획에 정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강력히 부인했다.
FT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의 탈출 계획은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됐다. 전문가들로 이뤄진 팀이 계획을 짜고 시행하는 데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곤 전 회장은 악기 상자에 숨어 도쿄 집을 빠져나온 후 오사카 공항에서 제트기를 타고 터키 이스탄불을 경유해 레바논으로 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이스탄불 공항을 경유한 과정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터키 내무부는 2일 그의 도주를 도운 혐의로 4명의 조종사와 운송회사 매니저, 2명의 공항 직원 등 7명을 체포했다.
알베르트 세르한 레바논 법무장관은 2일(현지시간) 곤 전 회장에 대한 인터폴의 수배 요청을 받았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세르한 장관은 이날 AP에 “레바논 검찰은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곤 전 회장은 오는 8일 베이루트에서 기자회견을 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곤 전 회장은 일본을 탈출한 경위와 일본의 사법제도 등에 대해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곤 전 회장은 탈출 후 발표한 성명에서 “일본에서는 차별이 만연하고 인권이 침해됐고, 국제법이나 조약이 우습게 여겨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일본의 사법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12월31일 인터넷판에서 “곤 전 회장이 (일본) 법정에서 오명을 씻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알 수 없다”며 일본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WSJ는 “(곤 전 회장이) 뚜렷한 범죄 혐의가 없는 상황에서 몇 주에 걸쳐 구속당하고, 변호사 입회도 없이 조사를 받아야 했다”며 “일본에서는 99% 이상의 피고인이 유죄 판결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앞서 곤 전 회장에 대한 일본 검찰의 수사가 한창일 때 프랑스와 미국 등 서방 언론은 곤 전 회장이 ‘이상한 종교재판’으로 몰리고 있다면서 일본 검찰의 편법적인 수사 행태를 비판했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최장 23일로 제한된 구속 기간 내에 수사를 끝내지 못하고 별건 수사 형태로 구속 기간을 연장한 것 등을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본 검찰과 경찰도 곤 전 회장의 불법출국 사건과 관련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NHK에 따르면 경찰은 곤 전 회장이 방문했을 가능성이 있는 장소 등의 방범 카메라 영상을 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도쿄지검은 이날 도쿄도 미나토구에 있는 곤 전 회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