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새해 벽두부터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영국 싱크탱크 경제경영연구소(CEBR)는 최근에 2020년 연례 세계 경제 순위표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조6,300억달러(약 1,886조원)로 조사 대상 193개국 중 12위를 차지했다. 아울러 2027년에는 한국 경제가 10위권에 재진입하리라고 예상했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지표로 볼 때 이제 한국 경제가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이러한 성적표를 받았으니 일단 자축할 만하다.
그러나 마냥 즐거워 할 수만은 없다. 우리가 세계 경제에서 10위권으로 재진입한다고 예상하는데 그 반대의 가능성은 없는지 또 순위가 올라가는 만큼 국제적 변동에 영향을 받을 텐데 이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돼 있는지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를 보면 상황 파악을 잘못해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가 있다.
18세기 후반 서양 열국의 배가 한반도에 출현했을 때 그냥 모양이 다른 배라는 뜻의 ‘이양선(異樣船)’으로만 파악했다. 세계가 원료 확보와 시장 개척을 위해 식민지 개척에 나선 상황인데도 ‘모양’에만 주목했다가 식민지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제적 안목을 갖추지 못한 결과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기억되는 1997년 외환위기도 마찬가지다. 자본시장의 자유화 이후에 투기 자본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었다.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는 것이 좋지만 어떤 형태의 자본인가를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가 수많은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
이제는 경제와 정치만이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나 혼자만 잘하면 되지’라는 속 좁은 관점에 안주할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사이에 우리를 둘러싼 주위와 세계가 돌변하면 다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맹자의 말을 귀담아들을 만하다.
‘지금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7년이나 앓는 묵은 병에 3년이 된 묵은 쑥을 구하는 것과 같다. 진실로 미리 갖춰두지 않으면 평생 얻지 못하리라. (금지욕왕자今之欲王者, 유칠년지병猶七年之病, 구삼년지애야求三年之艾也. 구위불축苟爲不畜, 종신부득終身不得.)’
7년간 앓는 병은 쉽게 낫지 않은 고질병을 가리킨다. 이 고질병을 낫게 하려면 보통이 아니라 특별한 약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3년간 잘 묵혀놓은 쑥이다. 그해에 갓 채취한 쑥을 갑자기 3년 묵은 쑥으로 만드는 비결은 없다. 3년간 묵혀놓은 쑥은 고질병이 나기 이전부터 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리라 다각도로 점검해보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하나씩 하나씩 해둬야 하는 것이다.
일자리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기업은 비용 절감과 현지화 전략을 위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고 수치상으로 성장을 하지만 실제로 그만큼 고용이 이뤄지지 않은지 꽤 오래됐다. 경제와 정치에서는 남의 이야기마냥 가만히 있다가 선거철이 되면 온갖 정책을 제시하며 일자리 개선을 약속하지만 아직도 탁월한 효과를 거둔 경우는 드물다. 3년간 묵힌 쑥을 내놓지 못하고 그해 갓 딴 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일이 제대로 풀리기가 어렵다.
이제 우리나라 경제는 세계 경제와 긴밀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아울러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산업 생태계의 변화도 이전과 다른 양상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와 국회는 선거 결과를 떠나 실효성 있는 대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금이라도 머리를 맞대고 3년 묵은 쑥을 준비해야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혜안을 찾을 수 있다.
지금 기존의 택시업계와 새로운 플랫폼의 ‘타다’ 문제가 이해당사자의 첨예한 갈등으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산업 생태계가 바뀌자 국제 사회는 앞다퉈 새로운 문법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우리는 큰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다. 큰 걸음으로 가야 할 때 작은 걸음으로만 가면 세계 경제 순위표 보고서에서 한국의 국내총생산 순위가 올라가지 못할 수 있다. 사회의 각 분야에서 국제적 안목을 갖추고 3년 묵은 쑥을 준비하는 노력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