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9일 평양 노동당 본부에서 열린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2일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김일성 주석의 1980년 당 중앙위 연설 장면./연합뉴스
북미가 무력사용을 공언하며 비핵화 협상이 최대위기를 맞은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할아버지인 김일성 전 주석 ‘따라하기’에 열중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집권 후 체중을 늘리고 중절모와 뿔테 안경을 쓰는 등 김일성 전 주석과 닮은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노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검은색 인민복과 흰색 재킷을 번갈아 입은 모습은 김 전 주석을 떠올리게 했다.
김정은, 김일성 따라하기 속내는
한해에 두차례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신년사 없이 12월 전원회의 보고를 통해 대내외 노선을 밝힌 것은 63년 전 김 전 주석의 행보와 너무 닮아있다.
이는 사회주의 강대국이었던 소련의 압력을 극복했던 김일성처럼 자신도 ‘초강대국’인 미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김 위원장의 결연한 의지로 해석된다. 김 전 주석은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집권 후 최대 정치적 위기에 봉착했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자신의 통치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 간부들과 함께 군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12월 4일 보도했다. 이는 선대인 김일성 전 주석이 백두산에서 항일 운동을 한 것을 따라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스탈린 사망 후 집권한 흐루쇼프 등 소련 지도부는 1956년 북한에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뜻하는 중공업 우선 정책에 대한 포기를 강요했다. 당시 김일성 정권의 권력 핵심에 있었던 최창옥·박창옥 등 ‘연안파’와 ‘소련파’는 소련을 등에 업고 김 주석에 대한 공세에 나섰다. 김 주석이 소련의 요구를 거부하자 이들은 김 주석의 외유 중 그를 축출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모의는 사전에 발각됐고 김 전 주석은 동유럽 사회주의국가 순방 중 급히 귀국했다. 그는 8월 전원회의를 열고 소련파를 제거해 일인 지배체제의 토대를 마련했다. 김 위원장은 현 정세를 8월 종파사건에 준하는 엄중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미국의 압박에 대비하기 위해 1년 8개월 만에 ‘경제·핵 무력 병진 노선’의 회귀라는 새로운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완공을 앞둔 평안남도 양덕군 온천관광지구 건설장을 현지 지도했다고 조선중앙TV가 지난해 10월 25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이 구상하는 새로운 길은?
김 위원장은 사실 전원회의 보고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 노선으로 ‘정면돌파’를 강조하면서도 초점은 국내 경제 발전에 맞췄다. 올해는 특히 김 위원장이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마무리되는 해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할 획기적인 성과가 필요하다. 김 위원장이 전원회의에서 경제 부문을 ‘침체’, ‘타성에 젖은’ 등 강한 표현을 쓰며 지적한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전원회의 결정서에 명시된 순서로만 보면 전략무기 개발보다 경제발전의 비중이 더 중요하게 다뤄진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 정권 입장에서 내부적으로는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가시적 성과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 의미 있는 대목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는 1956년 종파사건을 통해 권력기반을 다진 후 경제 총력전을 통해 자신의 통치체제를 굳건히 한 김 전 주석의 정책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 주석은 1956년 8월 전원회의에 이어 그해 말 다시 ‘12월 전원회의’를 열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과 ‘혁명적 군중노선’(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라는 관점에서 대중을 불러일으키는 노선)을 선언한 후 북한의 호황기를 상징하는 ‘천리마운동’이 시작됐다. 실제 6.25 전쟁으로 무너진 북한 경제는 급격히 성장해 김 전 주석은 북한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정권의 통치기반을 강화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2월 7일 양덕온천문화휴양지 준공식에 참석해 준공테이프를 끊었다고 8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스키장 리프트를 타고 있다./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동유럽 사회주의체제가 확고해 대외 상황이 나쁘지 않았던 김 전 주석과 달리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라는 큰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그는 이에 대한 처방전으로 관광사업 등 중러와의 교류협력을 통한 경제발전 구상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스스로 정한 연말 시한이 지났음에도 대화 판을 유지하는 것도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김 위원장이 대화 판을 이탈할 경우 미중 무역분쟁 등에서 중국의 대미 협상 카드로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 매체들이 김 위원장에게 연하장을 보낸 각국 지도자를 소개하며 중국을 가장 먼저 호명한 것도 중국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다행히 중국이 북한의 고강도 도발 시사에 자제를 요청한 만큼 김 위원장의 ICBM 도발을 통한 북미 비핵화 협상 판 이탈을 막을 지 주목된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