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32명에 대한 검사장급 신규 보임 및 전보인사 발표 다음날인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출근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8일 저녁7시30분. 법무부가 이례적으로 늦은 저녁 시간에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전격 단행하며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끄는 대검 검사장급 간부 8명 중 7명을 6개월 만에 교체했다. 추미애 신임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지 엿새 만이다. 인사 소식이 알려지자 검찰 내부는 물론 법조계와 야당에서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사모펀드 의혹과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과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총장 참모진에 대한 좌천성 인사가 ‘수사방해’ ‘보복인사’ 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현 정권의 비리·의혹을 수사하던 검사들을 좌천시키는 것은 도덕적·절차적으로 문제가 많고 무엇보다 정치적 중립성 확보라는 검찰개혁의 핵심과제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9일 “이번에 추 장관은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위법 논란을 자초하면서까지 인사를 강행했다”며 “이번 인사는 검찰 내부개혁도 필요하지만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법조계 안팎에서는 추 장관이 법령에 규정된 검찰총장의 의견청취 절차를 무시하고 검찰 인사를 강행해 탈법인사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인사를 단행한 추 장관을 업무집행방해·직권남용 혐의로 형사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 참석해 “대학살의 주인공인 문재인 대통령과 추 장관은 직권을 남용하고 검찰 수사를 방해한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검찰 인사는) 검찰청법 절차를 묵살한 불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명백한 보복인사이자 수사방해”라며 “(이것) 하나만으로도 문 대통령과 추 장관은 탄핵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와 법무부가 검찰을 장악하기 위해 법 규정을 무리하게 해석하면서 위법 논란을 자초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검찰청법 제34조(검사의 임명 및 보직 등) 1항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이 경우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고 명시돼 있다. 탈법 논란의 원인은 검찰의 경우 이를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 ‘협의’로 해석하는 반면 추 장관은 ‘의견경청’으로 보고 있다는 데서 비롯한다.
추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검찰인사는 검찰총장과 협의하는 게 아니고 (총장의) 의견을 듣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그는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검찰 고위직 인사에 대한 이른바 ‘검찰총장 패싱’ 논란에 대해 “검찰총장이 저의 명을 거역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충분한 시간 동안 의견을 내라고 요청했으나 윤 총장이 따르지 않았다는 게 추 장관의 설명이다.
검찰청법 제34조는 노무현 정부 초기 때 만들었다. 당시 초대 법무부 수장으로 임명된 강금실 전 장관과 송광수 검찰총장의 인사권 충돌이 발단이었다. 기존에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검찰 인사권을 적절히 안배하던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2003년 8월 강 장관이 송 총장의 의견을 배제한 채 단독으로 인사를 단행하면서 독단 논란이 불거졌다. 두 달 뒤 송 총장은 국정감사에서 “검찰 수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의지도 중요하지만 인사의 객관화와 공정화도 중요하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간 검찰인사 문제 협의를 법률상 명문화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법무부에 법 개정을 요구했다. 결국 2004년 1월 검찰청법 제34조에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는 문구가 추가됐다.
주목한 대목은 당시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법무부 장관의 검찰인사권을 통한 검찰 견제기능을 중시해 검찰총장에게 의견을 개진할 기회만 부여하면 된다’는 의견이 소수였다는 점이다. 의원 대부분의 의견은 ‘협의’에 방점을 뒀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당시 법사위 회의록을 들여다보면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는 문구가 있는데 이는 사실상 협의를 권고한 것으로 추 장관의 주장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추 장관의 이번 인사에는 절차적 위법성의 소지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재경 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법 개정 취지를 무시한 것이라 절차적 위법성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며 “검찰의 의견을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해버린 건데 어떻게 ‘공정하고 균형 있는 인사’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검찰의 수사 대상인 청와대 이광철 민정비서관과 최강욱 공직기강비서관이 이번 인사를 검증한 것도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 대상자로 지목된 청와대 관계자는 스스로 물러나야 하는데 인사 검증에 참여해 이번 인사의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추 장관의 상황에 따른 이중적 태도가 논란을 더욱 자초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추 장관의 과거 발언을 문제 삼는 것이다. 7년 전 추 장관이 야당 의원이었을 당시 국정원의 댓글조작 사건을 수사하던 윤석열 팀장이 수사에서 배제되자 이를 비판했다. 당시 야당 의원 신분이었던 추 장관도 당시 정홍원 총리와의 대정부 질문에서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해 정부와 설전을 벌였다. 추 의원은 정 총리에게 “열심히 하는 채동욱 검찰총장을 내쫓고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책임자인 윤석열 팀장을 내쳤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입장이 바뀐 현재 수사팀에 대한 보복인사 논란이 커지자 추 장관은 여당 소속의 법무부 장관답게 공정한 인사조치라며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법조계 일부에서는 이번 인사가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수 있지만 절차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검찰총장에게 의견개진 기회를 줬는데 이를 거부했고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제청해 대통령이 최종 결정한 만큼 논란의 소지가 없다는 분석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판사 출신인 추 장관이 법적 논란이 될 부분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겠냐”며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총장에게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고위간부 인사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차장·부장검사급 중간간부 인사에서 수사팀을 대거 교체한다면 이때는 상황이 달라져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현호·안현덕기자 h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