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재건축 안전진단 문턱...깜깜이 ‘구조안전성’에 달려

■ 본지 재건축 안전진단 결과 분석
'구조안전성'이 평가비중 절반
주거환경·설비노후보다 절대적
B등급 받으면 재건축 불가능
"1·2차 나눠 예산낭비" 지적도


재건축 첫 관문인 정밀안전진단에서 주거환경보다 건물의 구조가 통과를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가 안전진단 기준이 강화된 지난 2018년 3월 이후 서울에서 안전진단 결과를 받아든 여섯 개 단지의 평가 점수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 4가지 평가 항목 중 50%를 차지하는 ‘구조 안전성 평가’에서 B등급을 받고는 종합평가에서 재건축이 가능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붕괴 조짐이 있지 않는 한 비중이 큰 구조 안전성은 D등급이 나오기 힘들다”고 말했다. 안전진단은 100점 만점에 A~E등급 중 D(30~55점) 또는 E등급(30점 이하)을 받아야 재건축 추진이 가능하다. 1차로 민간 기관에서 통과된 후 2차 정밀안전진단인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를 최종 거쳐야 한다.

◇ 주거환경 나빠도 구조 안전성 ‘B등급’ 낙방 =지난 8일 마포구 성산동 성산시영 아파트가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후 서울에서 다섯 번째로 1차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했다. 앞서 양천구 목동 6단지, 은평구 불광동 불광미성, 구로구 오류동 동부그린, 서초구 방배삼호와 같은 ‘D등급’ 조건부 재건축이다. 이 가운데 현재 방배삼호만이 적정성 검토(2차 정밀안전진단)를 통과했다. 동부그린은 이 과정에서 C등급으로 수정돼 유지 보수가 결정됐다.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 아파트는 1차에서 ‘C등급’으로 첫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본지가 이들의 평가 점수를 분석해보니 구조 안전성이 성패를 갈랐다. 2018년 3월 이후부터는 이전에 0.2에 불과했던 구조 안전성 가중치가 0.5로 높아졌다. 이전에 가장 비중이 컸던 주거환경은 0.4에서 0.15로 크게 쪼그라들었다. 구조 안전성 대표 사례가 1차에서 떨어진 올림픽선수촌이다. 해당 항목평가에서 81.91점(B등급)을 받았다. 이 단지의 주거환경평가는 40.39점(D등급)으로 1차 관문을 통과한 목동 6단지(주거환경 평가 38.8점)와 큰 차이가 없다. 주거환경이 낙후된 것은 올림픽이나 목동 6단지나 비슷한데 구조 평가에서 운명이 갈린 것이다. 적정성 검토에서 탈락한 오류동부그린도 마찬가지다. 1차에서 구조 안전성 평가가 56.07점(D)이었으나 2차에서 76.35점(C)으로 껑충 뛰어 종합 평가 점수를 10점 이상 끌어올렸다. 나머지 항목은 점수 변화가 거의 없었다. 방배삼호는 2차 평가에서 구조 안전성 때문에 최종 관문을 넘어섰다. 구조 평가 점수가 1차 70.75점(C등급)에서 2차에는 64.71점(C등급)으로 줄었다.

성산시영의 경우 종합 53.87점(D등급)으로 조건부 재건축에 해당했다. 항목별로 보면 구조 안전성은 68.52점(C), 주거환경 32.36점(D), 건축마감 및 설비노후도 43.05점(D), 비용분석 40점(D)이었다. 구조 안전성에서 올림픽단지·불광미성 보다 더 낙후된 것이 1차 통과의 원인이다.

◇ 높아진 문턱, 깜깜이 점수 논란= 실제 생활하는 데 불편을 느끼는 주거환경이나 설비 노후도 평가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조 안전성을 통해 재건축이 결정되다 보니 주민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올림픽선수촌은 진단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고 용역 업체에 대한 소송을 고려 중이다. 올재모 회장은 “구조 안전성은 기술자의 주관에 따라 점수가 결정된다”면서 “지진이라도 나서 건물 일부라도 무너지면 주민의 안전은 장담 못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단지는 안전진단을 다시 받기 위해 모금을 시작했지만 수 억원에 달하는 용역비는 주민에게도 부담이다.

절차상 예산·행정 낭비 문제도 여전히 제기된다. 2차 적정성 검토는 주민들의 모금이 아닌 해당 지자체의 예산으로 진행된다. 혈세가 투여되는 셈이다. 1·2차 정밀안전진단을 통합해 공공기관에서 용역을 담당할 수도 있지만 민간 업체가 30~60%가량 저렴하기 때문에 통상 1차를 민간 업체에 맡긴다. 안전진단 업체 관계자는 “평가에 주관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면서 “재건축을 막는 정부 분위기에서 업체나 기관 입장에서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재명기자 now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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