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한국외국기업협회 회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외국인 투자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국내 산업 전반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다”면서 “무역대국의 위상에 걸맞은 사회적 인식 변화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성형주기자
정부가 최근 외국인투자동향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통계를 내놓았다. 지난해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233억달러(신고 기준)로 전년 대비 13.3%나 감소했다는 것이다. 제조업 투자는 부품소재를 중심으로 20% 가까이 줄어들었다. 꾸준히 늘어나던 외국인 투자가 6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선 셈이다. 참담한 성적표였다. 국내에 진출한 1만4,000곳의 외국 기업을 대변하는 한국외국기업협회의 이승현 회장(인팩코리아 대표)은 “한국의 투자 매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특히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제조업 투자가 많이 줄어들어 아쉬움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회장은 또 “자칫하면 기업인들이 예비 범죄자로 취급받는 형편”이라며 “이런 분위기에서 선뜻 한국에 투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부의 호언장담과 달리 외국인 국내 투자가 많이 줄었다.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주 52시간 근로제나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 인상 등으로 국내 기업환경이 나빠진 영향이 크다고 본다. 특히 부품소재 분야의 투자 규모가 신고금액과 실제 도착금액에서 큰 차이를 드러내고 있어 걱정스럽다. 정부가 팔을 걷어붙였는데 계획했던 투자마저 제대로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그만큼 상황이 안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 흐름은 한번 꺾이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투자 유인책 마련이 절실하다.
-주 52시간이나 최저임금은 외국 기업들과 별로 상관없는 문제 아닌가.
△한국의 강점은 다른 나라에 비해 속도감 있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근무 유연성이 떨어져 제품을 적기에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시장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들도 한국처럼 근무시간을 경직되게 운영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제약이 많다 보니 연구개발(R&D)센터를 운영하는 외국 기업들은 한국을 기피하고 여건이 나은 싱가포르나 홍콩·중국 등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아예 철수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최저임금이 2년 동안 30% 상승한 것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당장 최저임금에 걸리지 않더라도 기존 직원들의 임금도 무리하게 올려줄 수밖에 없어 전반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법인세나 세제 부문도 투자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 미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는 법인세를 낮추고 있는데 우리는 반대로 올리고 있으니 경쟁력이 생길 수 없다. 과거 외환위기 당시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려고 도입했던 외국인투자촉진법도 지난해 폐지됐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외투기업의 유보금을 한국에 투자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법안이 마련된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부품소재를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다. 외국 기업에도 호재로 작용하지 않겠나.
△일본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다변화하려는 노력은 일단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실제 유럽이나 대만 기업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비용이 올라가고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 부품소재 국산화 정책도 그렇다. 우리 육상선수에게 갑자기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라는 격이다. 외국 기술력의 95%는 금방 따라잡아도 나머지 5%나 1%는 굉장히 어렵다. 정부가 조직도 만들고 기업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지만 꾸준히 밀고 나가야 결실을 볼 수 있다.
-그래도 소재산업은 규제로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고 하는데.
△국내에 진출한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은 소재나 화학 분야가 많은데 갑자기 규제를 쏟아내다 보니 불확실성에 시달리고 있다. 신고관리 건수를 따져봐도 일본이 530여개 정도인데 우리는 이보다 3.5배나 많다. 본사에서는 문제가 없는 기술이 왜 한국에서는 안 되냐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사례도 많다. 규모가 작은 업체들은 비용 부담으로 신기술 개발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공장을 짓거나 생산라인을 설치할 때도 지역마다 요청자료가 달라 시간이 많이 걸리고 외부기관에 일일이 평가를 맡기다 보니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물론 화학물질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지만 법을 수시로 바꾸는 것은 문제다. 화관법과 화평법은 현실에 맞도록 대폭 조정해야 한다.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외국에 비해 어떤 점이 가장 어렵나.
△당장 산업안전보건법 때문에 기업인들이 자칫하면 범법자로 몰릴 상황이다. 기관마다 수시로 대표자를 불러대는 것은 문제다. 글로벌 기업은 절차와 과정을 엄격하게 따지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사소한 문제가 생기면 바로 물러나야 한다. 대표가 매사에 책임을 떠안아야 하고 이를 방지한다며 외부 컨설팅을 맡기다 보니 비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사실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을 낮춰보는 경향이 있다. 시장 규모도 그렇지만 법이 자주 바뀌고 신뢰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에서는 수시로 골대를 옮겨버리니 따라가기 쉽지 않다. 국회에서는 얼마나 많은 규제법을 쏟아내나. 로펌에 일감이 몰리고 노사분규로 노무사 몸값이 치솟는다고 한다. 법이 법을 만드는 이런 나라가 정상은 아니다. 규제 혁파를 한다고 부르짖으며 수백개의 법을 만드니 당해낼 재간이 있겠나. 입법과정에서 공청회라도 열어야 하는데 일부 형식적인 사례를 빼고 그런 절차를 거쳤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놓고 부작용을 지적하면 말이 많다고 타박이나 주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규제가 결국 외국 기업의 발길을 돌리게 만든다고 봐야 하나.
△글로벌기업 입장에서는 한국의 규제가 많아지고 경영여건이 까다로워지면 다른 나라로 옮기려고 한다. 당연한 수순이다. 공장이 세계 곳곳에 있으니 그냥 다른 데로 옮겨버리면 그만이다. 경쟁국들은 이런 한국의 불리한 여건을 앞세워 자국으로 유치하려고 나서는 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법인 대표들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서 싸우는 세일즈맨이라고 볼 수 있다.
-경직된 노동시장이 투자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많다.
△글로벌 기업 가운데 강성노조를 의식해 한국 진출을 꺼리는 곳이 적지 않다고 본다. 우리도 이제 노사문화나 쟁의방식이 달라져야 할 때다. 정부가 근로자 편에 선다면 근로자들도 이에 맞춰 인식을 바꿔야 한다. 사실 현 정부가 노사문화 개선에 가장 적극적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방치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르노삼성만 해도 그렇다. 한때 글로벌 상위권에 꼽히던 부산공장이 어쩌다 물량 배정마저 걱정해야 처지에 몰렸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오죽했으면 임원이 ‘외국계 기업 자회사의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자’는 편지를 남기고 사표를 던졌겠는가. 부산 지역 공무원과 정치인들도 반성해야 한다. 아무도 거들지 않으면 기업 혼자서 어떻게 버티겠나. 외국처럼 노사분규를 중재하는 중립적인 기구를 설치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정부도 나름 외국투자 유치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는데.
△산업부가 분기마다 외투카라반을 운영하면서 권역별로 현장을 찾아 애로사항을 듣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노력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지난해 5월에는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사고가 나면 공장 전체를 폐쇄하는 조치의 부당성을 건의해 곧바로 해결된 적이 있다. 기업 민원이 집중된 환경부 장관과도 면담을 추진했지만 쉽지 않더라. 환경부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기업들과 만나는 것을 꺼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현장의 애로사항을 듣고 기업과 소통하는 자리를 좀 더 많이 갖기를 바란다.
-외국 기업을 바라보는 인식은 어떻다고 보나. 개선될 점이 있다면.
△우리도 외국인투자가 지금의 두 배 수준인 500억달러를 넘어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정상궤도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왜 외투 기업에 특혜를 주느냐는 얘기를 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맞느냐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 제품이 전 세계에 팔리고 있으니 모두가 고객이자 파트너라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말로는 한국 기업이라면서 기업 편드는 일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많다. 정부도 우리 협회를 주요 경제단체로 봐야 하는데 립서비스에 머무를 뿐이다. 지난해 3월 처음으로 청와대에서 외투 기업 간담회를 가졌지만 과거 정부에 비해 홀대받는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자부심을 갖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협회 차원에서 올해 사업계획은 뭔가.
△외국 기업들은 국내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고 고용의 7%를 책임지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2%에 달한다. 올해부터 기업들이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독려하고 협회 인지도를 높여 경제단체로서 제대로 대접받도록 노력하겠다. 국내에 투자가 많이 이뤄지고 경기가 좋아야 외투 기업도 많이 들어온다. 정부와 손잡고 해외에서 투자 유치활동에 나서는 방안도 적극 추진할 것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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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하고 1982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기획관리·감사업무를 익히고 자동차사업과 LCD TV 일류화추진실에서 근무했다. 2006년 삼성전자를 나와 JAE코리아 대표를 거쳐 2015년부터 인팩코리아 대표를 맡고 있다. 서울시 외국인 투자자문회의 위원,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투자유치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