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승효상 "빈자의 미학 30년…이젠 개인 건축작업에 몰두할 때죠"

■건축계 거장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
공공성 결여된 건축은 도시 망가뜨려
서울시 도시재생·걷는 도시 만들기는
'빈자의 미학'으로 만든 사회적 변화
과거와 단절된 곳엔 '터무늬 없는 삶'뿐
돈 벌려 집 사고파는 떠돌이 되기보단
터에 오래 살며 자신만의 무늬 새겨야


고대 그리스 문명의 상징인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는 그 유적만큼이나 그곳으로 들어가는 ‘길’도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언덕길을 따라 조성된 돌 바닥이 그 주인공이다. 수백 년 된 대리석 파편부터 용도를 알 수 없는 신고전주의 석재까지 통로 바닥을 구성한다. 오래된 폐허의 ‘터’에 흩어진 돌들이 나름의 ‘무늬’를 만들어내 3,000여년의 역사를 짐짓 상상하게 한다. 지난 1950년대 그리스의 건축가 ‘디미트리스 피키오니스’가 아크로폴리스 주변 조경으로 만든 지형(地形)이다. 1989년 그의 작업은 ‘감성의 지형(sentimental topography)’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되고 책으로 나왔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으로 국내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건축가인 승효상(67·사진) 이로재 대표는 현재 그의 건축 인생을 반추하는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본지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건축 인생 제2막의 제목으로 바로 이 ‘감성의 지형’을 끄집어냈다. 그는 “30년 전 그 풍경이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았는데 최근에 다시 아테네에 다녀오고, 이런 건축에 몰두하고 있다”면서 “30년 동안 해온 건축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이슈가 감성의 지형”이라고 설명했다.

<‘빈자의 미학’ 30년을 딛고 나서다>

승 대표는 이로재 건축사사무소 설립 이후 30여년 동안 빈자의 미학을 가치로 설계 작업을 해왔다. 30년이면 한 세대가 지난 긴 세월이다. 그는 스스로 빈자의 미학을 정리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새 주제는 과거를 돌아볼 뿐만 아니라 새 출발을 알리는 시작점이 됐다. 인터뷰에서 그는 30년 건축 인생을 세 단계로 나눠 다음 이슈로 넘어가게 된 연유를 술회했다.

“1989년 이로재를 열면서 어찌 보면 초기에는 ‘빈자의 미학’이라고 선언만 하고 실체화하지 못한 채 모색하는 과정이었지요.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어반 보이드(urban void)’ ‘문화풍경(culturescape)’ ‘지문(landscape)’과 같은 핵심 언어들이 동반됐습니다. 1990년대는 빈자의 미학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단일 건물에 골몰해 이웃과 더불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앞뒤로 길을 좀 내어주고 주변과 더 잘 교류할 수 있다면 좋은 건축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후 2000년대는 건축가 승효상의 역작이자 변곡점으로 꼽히는 ‘웰콤시티’로 대표된 시기다. 건축물에서 도시 단위로 규모를 키운 만큼 ‘윤리적인 건축’을 더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최근 웰콤시티는 승 대표의 반대에도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마침 웰콤시티 뒤편에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한 파라다이스 집에서 이번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웰콤시티는 7개 필지를 합해 지으니 그 단위가 커지게 됐습니다. 앞뒤를 최대한 덜 가리고 빛과 시야를 전하기 위해 4개의 동으로 나눴지요. 개인 업무시설은 4개 동으로 올리고 가로와 맞닿은 포디움(기단)은 한 덩어리로 안정시켜 강당·전시장 등 공유시설을 뒀지요. 리모델링하겠다며 양해를 구해왔길래 기단 부분을 깨는 건 절대 안 된다고 답했건만 결국 개념은 불구가 됐네요. 건축이 가지는 도시의 윤리를 구현하고자 설계한 건물인데 말입니다.”


<‘욕망’을 멈춰 세우고 ‘터무늬’를 논하다>


2010년대는 공공의 영역 한가운데 서 있었다. 서울시 총괄건축가를 시작으로 행정과 정치를 통해 빈자의 미학에 따른 도시, 건축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힘썼다. 개인의 건축관이 사회적 영향력을 갖추며 소위 사회운동으로 공공의 대중과 만나는 계기였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방법론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더 나아가 비방하는 여론도 등장했다.

“사람들이 제대로 알든, 모르든 승효상이라고 하면 빈자의 미학이라고 알려졌습니다. 빈자가 무슨 미학이 있느냐는 비아냥도 많았지요. 하지만 저는 이 단어의 중요성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빈자의 미학은 빈자들을 위한 미학이 아니라 빈자이고 싶은 사람, 돈이 있어도 절제할 줄 알고 겸손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정신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의 미학입니다. 당연히 참될 수밖에 없는 거죠.”

빈자의 미학을 통한 건축의 사회적 가치는 단연 공공성이다. 도시와 건축의 관계, 불편한 건축, 무용 공간, 침묵의 건축 등의 이슈를 집중적으로 탐구했고 충직하게 지켜왔다. 대도시 규모로 확대했을 때 공공성 확보를 끈질기게 고집하지 않으면 도시의 지속가능성은 사라진다고 봤다. 결국 건축물은 공산품과 달리 땅과 함께 오래 남겨지기 때문에 공공성이 결여된 존재 자체로 오랫동안 폭력이 되는 셈이다. 그는 “빈자의 미학이 만든 사회적 변화로 서울시의 ‘도시재생’과 ‘걷는 도시 만들기’를 꼽을 수 있다”면서 “과거와 단절된 도시의 삶을 조상의 말 그대로 ‘터무늬 없는 삶’이라고 꼬집었다.

‘터무늬 있는 삶’을 위해 물리적 탐욕이나 기능적 효율성이 멈춰선 경건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원래 무슨 공간이었든, 우리가 누구였는지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그는 “도시가 지속하기 위해서는 번잡함을 뒤로하고 마음과 영혼을 두드리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며 “감성의 지형은 ‘터무늬’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화두이자 구체적인 방법론”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빈자의 미학은 충직하게 실행해왔으므로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대중에 맡기겠다”며 “건축가는 바탕만 만들어주고 어떻게 사는지 관조할 뿐”이라고 밝혔다.


<공공의 광장에 ‘감성의 지형’을 드밀다>

승 대표는 “이제 경제력보다 행복지수를 말해야 할 때”라고 힘줘 말한다. 경제 강국이 돼도 행복하지 않은 우리 삶이다. 이 같은 삶이 반영된 것이 주택이다. 그가 자주 서울시와 비교하는 오스트리아 빈은 주택의 셋 중 두 채가 임대주택이고, 임대주택을 물려받아 그 동네에 오래 산다고 한다. 부동산 양도차익을 위해 이사 다니는 삶이 승 대표가 말하는 떠돌이 삶이며 행복할 수 없는 삶이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은 정주함으로써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머문 터에 무늬가 생길 때까지 오래 살면서 자기만의 지형을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돈 말고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처럼 오래 머물러 살며, 공동체가 생기고 그 속에서 행복하니 삶의 질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는 지금이 가장 좋은 건축을 할 수 있을 때라고 자신했다. 주변의 적극적 만류에도 ‘국건위’ 위원장을 연임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10여년간 공공에 나름 봉사하다 보니 본업인 이로재의 일은 엉망이 된 터다. 승 대표는 민간에 돌아가 들어오는 건축설계 일들을 할 수 있는 데까지 많이 해보겠다고 공언했다. 겸손한 건축만 한다며 그를 피하던 재벌 또는 디벨로퍼 건축주도 이제 손 벌려 환영한다.

“어린 시절부터 감동 받은 해나 아렌트의 말 중에 ‘인간성의 완성이라는 것은 밀실에서 이뤄질 수 없다. 그리고 개인의 작업을 내놓는 것으로도 이뤄질 수 없다. 인간성의 완성은 공공의 영역에 자기 자신을 투영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는 일이다’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말에 따라 남보다 더 공공 영역에 있게 된 셈인데요. 주변 사람들도 공공에서 나오라고 설득했고요. 하지만 30년 건축을 해보니 두 번째 말은 동의할 수 없더군요. 건축은 워낙 공공적인 가치가 있는 작업이라 일단 개인의 훈련을 통해 공공에 개인의 건축적 작업을 내놓는 게 가장 공공적인, 최종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개인의 밀실에 있지도 않았고 공공의 광장을 비켜 간 적도 없지만 더욱더 공공적 가치를 위해 아렌트의 말을 뒤집어 개인의 작업에 몰두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재명기자 nowlight@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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