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타트업 대표가 컨설팅업체로부터 받은 컨설팅용역제안서
(#1)서울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 대표는 한 컨설팅업체로부터 제안서가 담긴 메일을 받았다. 이 업체는 자신과 컨설팅 협약을 맺으면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게 해주겠다며 정부 지원금은 이자는 물론 담보나 보증, 상환 의무도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지금이 지원금을 받을 절호의 기회라는 점도 강조했다. 특히 1년 계약에 협약금으로 600만원, 성공수수료로 지원금의 6%를 요구했다. 박 대표는 “사업을 하면서 브로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노골적으로 협약금과 성공수수료까지 요구한다니 기가 막힌다”면서도 “기업 입장에서도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고 생각될 때는 생각이 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지난 연말 서울 강남에서 열린 한 창업 설명회. 지식산업센터 투자를 권유하는 한 분양대행사가 만든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R&D 자금을 정부로부터 받아 사옥을 마련하라’는 강의였다. 지식산업센터 투자와는 무관했기에 더 생뚱맞았다. 이날 강연에 나선 창업 지도사는 “기업가라면 누구나 사옥 마련을 꿈꾸지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하지만 5,000만~50억원까지 받을 수 있는 연구·개발(R&D) 지원금을 이용하면 사옥 마련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R&D 지원금은 상환의무가 없기 때문에 R&D 지원 사업에 참여해 성공 판정을 받을 경우 영업이익의 실현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제2 벤처 붐’ 조성을 위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등을 위한 지원금 규모를 늘리면서 정책자금 브로커 등도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자신들의 인맥과 정보 등을 이용해 ‘정부지원금을 받게 해주겠다’며 기업을 유혹한다. 최근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손을 뻗고 있다. 이미 유튜브 등에서는 ‘창업 지원금’이나 ‘정부 지원금’ 등으로 검색하면 ‘정책자금을 손쉽게 받아주겠다’는 컨설팅회사를 홍보하는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벤처업계의 한 관계자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무료로 컨설팅을 해주겠다며 기업에 접근한 뒤 직접 방문하면 더 자세한 상담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미끼를 던진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들을 적발하는 것은 물론 처벌도 쉽지 않다는 점. 실제 중소벤처기업부는 14개 업체에서 현행법 위반 소지를 발견하고 지난해 5월 사법기관에 수사 의뢰했지만, 이들은 모두 증거부족 등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정책자금 브로커 신고 센터’의 실적도 비슷하다. 이 센터를 통해 접수된 신고 건수는 지난 2017년 3건, 2018년 2건, 2019년 14건으로 최근 급증했다. 하지만 신고 후 처벌받은 곳은 한 곳도 없다. 협약금과 성공보수 등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컨설팅에 대한 대가로 개인 혹은 기업 간의 계약이라고 주장할 경우 불법 행위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 처벌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과거 컨설팅 업체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변호사가 사건을 맡을 때 수임료를 받고 사건 결과에 따라 성공보수를 받는 것과 같은 원리를 적용한다면 사실상 처벌 근거가 없다”며 “공무원을 사칭 했다거나 등의 사기 행위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컨설팅과 브로커는 어떤 측면에서는 한끝 차이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는 브로커들이 기업과 성공 조건부 계약을 체결해 수수료를 받은 뒤 정책 자금 지원 등에 성공한다면 문제는 없다는 쪽이라 이런 문제에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