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화폐 50링깃 뒷면을 보면 왼쪽에 나무 문양이 그려져 있다. 팜나무다. 나랏돈에 새겨질 정도니 팜나무가 얼마나 상징적인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실제 팜나무 열매를 쪄서 압착해 만드는 식용 기름인 팜오일(palm oil·야자유)은 말레이시아 경제의 주요 버팀목이다. 말레이시아는 인도네시아와 함께 세계 팜오일의 85%를 공급하고 있으며 이 중 40%가 말레이시아 몫이다. 한해 수출액만 15조원에 육박한다. 전자·석유제품에 이어 3위 수출 품목이다.
이렇게 팜오일의 주 생산지는 말레이시아 같은 동남아지만 원산지는 따로 있다. 자이르 등 아프리카 열대지방이 원조다. 1897년 프랑스 신문은 5000년 된 고대 이집트인의 무덤에서 팜오일로 추정되는 물질이 발견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동남아로 건너온 것은 1848년 인도네시아 보고르 식물원에 관상용으로 이식된 게 최초 기록이다. 기름 생산 목적의 재배는 말레이시아에서 1911년 처음으로 이뤄졌는데 본격 수출이 시작된 1960년 이후 세계 식용 기름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보통 식물성기름은 상온에서 공기와 만나면 부패하는데 팜오일은 고체로 유지돼 식품 가공에 용이할 뿐 아니라 운반이 편하기 때문이다.
현재 팜오일은 초콜릿·라면은 물론 비누·화장품 등에까지 사용된다. 세계자연기금(WWF)은 슈퍼마켓 판매 제품의 절반가량이 어떤 형태로든 팜오일을 함유하고 있다고 밝혔을 정도다. 최근에는 친환경 바이오 연료로도 각광받고 있다. 팜오일에 메탄올과 첨가제를 넣어 가공하면 바이오디젤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무분별한 팜오일 농장 조성으로 열대우림이 대거 사라지는 등 환경파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동남아 숲에서 사는 오랑우탄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세계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말레이시아 팜유 산업이 최근 위기를 만났다. 인도 정부가 잠무·카슈미르 점령 등에 대해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가 비판했다는 이유로 팜오일 수입 제한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말레이시아로서는 연간 2조원 상당의 대(對)인도 수출이 차질을 빚게 생겼다고 한다. 정치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임석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