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첫 판결' 유해용 前대법 수석 무죄… 양승태 재판 등 영향 줄까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법원을 나서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연합뉴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유해용(54·사법연수원 19기)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기소된 사건 중 처음 나온 1심 판단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박남천 부장판사)는 13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유 전 수석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지난해 3월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의혹으로 추가 기소된 10명의 전현직 법관 가운데 한 명이다.

유 전 수석은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대법원 재판 검토보고서 원본 등의 문건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이를 파기한 것으로 의심받았다. 재직 당시 담당하던 사건을 변호사 개업 후 수임한 혐의도 있다.


재판부는 검찰이 유 전 수석의 혐의를 입증할 만큼 증거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유 전 수석이 문건 작성을 지시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전달했다거나 이를 임 전 차장이 청와대 법무비서관에게 제공하도록 공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절도 혐의 등에 대해서도 역시 ‘증거 부족’을 이유로 모조리 무죄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유 전 수석이 검토보고서를 유출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유 변호사가 일부 파일을 변호사 사무실에 보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혐의가 성립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 전 수석이 직무상 취득한 사건을 수임했다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유 변호사가 직무상 취득한 사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법조계에서는 유 전 수석이 양 전 대법원장과는 공모 혐의가 없던 만큼 이번 판결이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 직접적으로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다만 유 전 수석 재판부가 양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 등 주요 피고인들의 재판도 함께 심리하는 만큼 다른 재판에서도 검찰 측이 제출한 증거의 능력을 엄격히 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칫 이번 판결을 계기로 증거 부실 문제가 고개를 들면 검찰이 관련 사건을 부실하거나 무리하게 수사·기소했다는 비판 여론이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판 직후 유 전 수석은 “공정하고 정의롭게 판결해준 재판부에 깊이 감사한다”고 밝혔다. 반면 관련 사건을 최초 폭로한 이탄희 전 판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법농단의 본질은 헌법 위반이지 형사사건이 본질은 아니다”라며 “이번 판결이 사법개혁의 흐름에 장애가 된다면 그것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무책임함, 20대 국회의 기능 실종이 빚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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