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국민연금을 전면에 내세운 노동계 등 진보진영의 기업 경영권 압박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원칙) 정착” 발언에 맞춰 시행령·시행규칙 등의 제도 정비도 속전속결로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을 필두로 한 공적 연금 등 기관투자가의 경영권 간섭이 올해 주총 시즌을 계기로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참여연대와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은 14일 국회에서 ‘문제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활동 방안 모색’ 토론회를 개최한다. 김남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부회장이 좌장을 맡고 양대 노총과 경제개혁연대, 국민연금연구원 관계자가 토론을 벌인다. 토론자 명단에 경영계 대표는 없고 국민연금 상급 부처인 보건복지부에서는 서기관급 실무자가 참석한다.
참여연대 등은 앞선 9일 논평을 내 삼성물산·삼성중공업·효성·대림산업 등 4곳을 ‘문제기업’으로 지목하고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압박했다. 이들 단체는 “국민연금은 조현준 효성 회장과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의 이사 연임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면서 정관변경과 독립 사외이사 후보 추천 주주제안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 계열사 두 곳에 대해서는 주주대표 소송과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했다. 일종의 선전포고인 셈이다. 재계에서는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진그룹(한진칼) 주총에서도 주주권 행사가 빗발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연금이 최근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을 확정하는 등 사실상 경영개입의 길을 터놓은 상태여서 당장 올해 주총 시즌부터 정관변경과 이사해임 요구 등 직접적인 경영 개입이 가능하다.
주주제안까지는 기업과 비공개 대화 등 2~3년의 기간을 뒀지만 기금운용위원회의 판단으로 이를 단축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313개, 10% 이상은 100여개에 이른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헤지펀드가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할 때 써먹던 방식을 국민연금도 쓸 수 있게 되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뿐 아니다. 금융위원회는 시행령 개정을 통한 5% 대량보유 공시의무(5% 룰)와 10% 이상 주주 단기매매차익 반환의무(10% 룰) 완화 조치도 올 주총 시즌부터 적용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5% 룰 완화 조치에 따라 기관 투자자들의 정관변경과 임원 보수 등에 관한 요구는 경영권 영향 목적이 아닌 것으로 인정돼 보고 의무가 완화된다. 금융위는 완화된 조치를 내달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경영 참여 목적으로 지분 10% 이상 보유 연기금이 6개월 이내에 주식을 매매해 차익을 얻은 경우 반환하도록 한 10% 룰도 주주권 행사에 유리하게 완화된다. 기관투자가 입장에서는 적극적인 경영 간섭이 가능해진 셈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민연금 등 적극적 주주권 행사 수요가 있는 기관에서 내부 통제장치를 마련해 당국 승인을 받으면 올해 주총 때는 실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재계는 강력 반발하면서도 노심초사하고 있다. 5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당장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할 소지는 없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정권 입장에서 국민연금이 몇몇 ‘갑질 기업’을 손보는 게 지지층을 결집 시키는 효과가 있다”면서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불확실성에 노출된 기업이 투자에 소극적이 되는 등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경상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기업들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우려가 큰 만큼 엄격한 내부 통제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한재영 황정원 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