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설계는 바둑보다 훨씬 더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차장 설계만 해도 지난해 말 이세돌 9단과 맞붙은 ‘한돌(HanDol)’이 40일 이내에 풀어낼 수 있다면, 2016년 알파고는 수개월이 걸렸을 것입니다. 이제 이보다 발전한 알파고 ‘제로’는 수일 만에 주차장 설계를 한다고 하니 3년 만에 인공지능은 더 빨라진 셈입니다. 건축 자동화 설계 기술도 이만큼이나 빨리 진화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이 건축 분야에서도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까. 조성현(사진) 스페이스워크 대표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건축설계가 AI로 자동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학생 때부터 확신했다고 말했다.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몽상 같던 건축설계 자동화는 정말 현실로 다가왔다. 스페이스워크는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통해 이 같은 꿈을 만들어가고 있다.
<‘건축+ICT’, 경계 없는 작업실>
조 대표는 대학에서 건축과를 다닐 때 컴퓨터공학을 함께 공부했다. 부동산학회 동아리에서도 활동하면서 건축과 부동산을 정보통신기술(ICT)로 융합하고 싶다는 지향점을 가졌다. 그가 AI 건축설계 기술을 처음 개발한 것은 9년 전이다. 조 대표는 “예술성이 있는 설계는 다르지만 기획설계라면 토지의 조건, 용적률과 건폐율, 신축 후 예상 수익 등을 고려하면 AI로 최적의 설계안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그는 지난 2013년 뜻이 맞는 대학 동기들과 ‘경계없는작업실 건축사사무소’를 창업했다. 건축, 인테리어, 브랜딩, 소프트웨어 개발, 부동산 개발 등 영역의 경계 없이 해보자는 데서 이름을 땄다. 3년간 건물 20여개를 짓고 300여건의 수익형 부동산 개발을 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설계 자동화 연구를 지속했다. 건축 설계에 AI의 결과물을 얹자 건축주를 설득하기 쉬워졌다.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2018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2018 젊은 건축가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는 계속됐다. 조 대표는 ‘랜드북’이라는 자동화 설계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 가로주택정비사업 설계 자동화 엔진을 개발해 제공했다. 그는 “수익성뿐만 아니라 설계자동화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등 공익에도 도움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경기도시주택공사·인천도시공사 등 공공기관에서도 랜드북이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 규모가 작고 공익 성격을 띨수록 고품질의 설계 서비스를 받기 쉽지 않다. 조 대표는 “한국 도시의 특성상 필지가 작고 소규모 건물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재개발이 아니고서는 일정 품질 이상의 건축 설계를 받을 수 없었다”면서 “스페이스워크의 랜드북을 통해 아무리 작은 개발이라도 누구나 보편적인 수준의 설계안을 받아보기를 기대했다”고 설명했다.
<한 단계 더 진전... 프롭테크 혁신의 최전선>
그는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단순한 건축사 사무소를 넘어서 ‘스페이스워크’라는 프롭테크 기업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는 한국프롭테크 포럼의 이사도 맡고 있다. 이 과정에서 AI 전문가인 이경엽 최고기술책임자(CTO)가 합류하면서 기술력은 더 높아졌다.
조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개발 과정을 거쳐 랜드북의 AI 기술을 ‘유전(진화)알고리즘 방식’에서 ‘심층 강화학습 방식’으로 완전 재구성했다. 알파고 제로에 사용된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그는 “건축물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수십·수백만개의 단계 데이터로 패턴을 찾아 나가는데 건축은 경우의 수도 많고 법규도 계속 바뀌기 때문에 과거의 것만으로는 학습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면서 “더 많은 경우의 수를 탐색할 수 있고 변화한 조건에도 대응할 수 있는 심층강화학습 방식이 현실 설계에 더 적합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스페이스워크는 심층 강화학습 방식 분야에서도 프롭테크 업계에서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개발자들과 함께 지난해 9월 텐센트에서 주관한 ‘세계농업인지능대회’에서는 예선 2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AI로 스마트팜을 구성해 토마토 재배를 누가 잘하는지 겨루는 대회다. 인텔·MS·텐센트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상위권을 차지해왔다. 조 대표는 “데이터가 많은 핀테크와 달리 농업도 건축과 같이 실물 자산 데이터가 없어 심층강화학습을 활용해 새로운 틀을 만들어가야 하는 노하우가 공통점이었다”면서 “올해는 6월까지 네덜란드에서 본선을 진행한다”고 한껏 들떠 있었다.
<직원 모두가 전문가...‘투명한 인재’>
건축·디벨로퍼·개발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벌써 직원이 3년여 만에 3명에서 열 배가 늘어났다. 다양한 직군의 동료를 뽑으면서 그는 ‘투명한 인재’가 가장 중요하다고 손꼽는다. 조 대표는 “‘투명한 인재’란 각자가 맡은 분야에 대해 소통하고, 실수도 인정하며 더 좋은 쪽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전문가”라며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풀어나가며 결정도 할 줄 알아야 프로젝트가 진전된다”고 말했다. 연차에 따라 어떤 업무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판단하고 지시하는 기존 회사와 다르게 결정 권한을 더 전문적인 직원 개개인에게 넘기는 게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부동산 스타트업 기업으로 건의사항도 제시했다. 토지, 도로, 부동산 정보가 과거보다는 풍부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국제적으로 경쟁하기에는 전산화도 덜 돼 있고 각 정보끼리 꼬여 있는 게 현실이다. 조 대표는 “대표적으로 도시계획도로의 경우 건축법에서 지정한 도로와 도시법에서 지정한 도로가 다르다”면서 “함께 전산화되면 좋겠지만 일일이 구청에 전화해 물어야 하는 게 지금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또 “서울만 해도 전체 토지의 7~8%가 지구단위계획이 짜여 있지만 아직도 어느 정보가 최신인지 알 수가 없어 랜드북에서도 반영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면서 “한국프롭테크포럼 이사로서 제도 개선에도 목소리를 내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이재명기자 nowlight@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He is…
△1982년 서울 △2010년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2010년 아이아크 건축사사무소 △2013년 경계없는작업실 건축사사무소 창업 △2013~2015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 도시재생자문위원·사업자문단위원(PA) 활동 △2016년 스페이스워크(SPACEWALK) 창업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2018 젊은건축가상’ 수상 △2018년 한국프롭테크포럼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