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10월23일 열린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서 미술품 양도세 과세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에서 미술품은 취득·등록세는 물론 보유세·관세 등 제반 세금이 붙지 않는다. 양도세 역시 경매회사·화랑은 법인세와 사업소득을 내지만 개인 컬렉터의 경우 ‘기타소득’이라는 제한적인 형태로 부과된다. 사업소득으로 종합과세하면 세율이 최대 46.2%에 이르지만 기타소득으로 분리과세하면 필요경비율을 80%까지 인정(비용 공제)하기 때문에 지방세를 합해도 4.4%에 불과하다.
개인 컬렉터에 대한 미술품 양도세 부과는 미술업계의 반대와 숱한 논란 끝에 지난 2013년 1월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정부가 1990년 서화·골동품에 대한 양도세 과세방안을 발표하고 입법에 나선 후 무려 23년 만이다. 그동안 법안폐기 1회, 시행연기 6회의 진통을 겪었다.
지난해 10월 미술업계가 정부의 개인 컬렉터에 대한 양도세 과세 강화 방침에 반발한 것은 기타소득으로만 과세하기로 했던 약속을 깼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이승훈 화랑협회 총무이사(본 갤러리 대표)는 “국세청에서 유권해석으로 일부 개인 컬렉터들에 대해 사업소득으로 과세했다는 사례가 수집되고 있다”며 “조세 형평성도 중요하지만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당장 양도세 과세기준을 바꾼다기보다는 거래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고 ‘사업행위’로 판단되는 경우 사업소득으로 과세할 수 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현행 소득세법에는 어느 선까지 사업소득으로 볼 것인지에 관한 명시적인 조항이 없다. 다만 미술품 거래가 영리 목적이거나 계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뤄질 경우 사업소득으로 과세할 수 있다는 게 세무업계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현행 양도세 규정은 사실상 반쪽짜리다. 작고한 작가의 6,000만원 이상의 작품에 대해서만 과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국내 미술품 시장의 규모도 크지 않고 과세 대상 작가와 작품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기타소득을 사업소득으로 바꾼다고 해서 당장 정부가 확보할 수 있는 세수 효과가 크지는 않다. 국세청이 지난 5년간(2013~2017년 과세 연도) 거둬들인 양도세는 148억원에 불과하다. 직접 양도세를 낸 개인이 5년 동안 118명(176건)에 그쳤다는 것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방증이다. 미술품 거래를 자발적으로 신고하도록 제도를 개선하지 않는 한 과세 강화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미술업계는 왜 이렇게 미술품 양도세 과세에 반대하는 것일까. 단순히 세금 문제만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자칫 미술품의 불투명한 감정과 유통과정 개선 등 전반적인 시장 압박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세무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처럼 시장이 영세한 상황에서는 세금 이야기를 하는 순간 다 숨어버린다”며 “유통과정 개선과 자금출처 조사에 대한 우려가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에도 미술업계의 반발은 거셌다. 국세청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한편 정치권을 움직여 지난해 11월 말 개인 컬렉터의 양도세는 기타소득으로만 과세한다는 내용의 소득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과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득세법 제21조 25항의 ‘양도’를 “양도(자기의 계산과 책임하에 계속적·반복적으로 양도하는 경우를 포함하되 사업장을 갖추는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제외한다)”라고 수정했다.
정부도 또 한발 물러섰다. 5일 양도세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양도가액 1억원 이하 서화 및 골동품은 필요경비율을 90% 적용한다. 필요경비율이 기존보다 10%포인트 높아진 만큼 세율도 4.4%에서 2.2%로 낮아진다. 양도가액이 1억원을 초과할 때는 기존처럼 80%의 필요경비율을 적용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미술품 유통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양도세 부담을 줄여달라는 의견을 수용했다”고 말했다. 시행령 개정안은 오는 28일까지 입법예고를 마치고 국무회의 등을 거쳐 2월1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미술품 양도세 과세를 정상화하되 시장 충격은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업계의 자발적인 신고·등록을 유도하고 소액 미술품 거래를 늘리기 위한 인센티브 마련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우선 미술품을 거래하는 화랑·경매회사 등 유통업자들이 법에서 정한 기준을 초과해 수입을 신고할 경우 초과분에 대한 공제 등의 혜택을 부여하는 조세특례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이다. 음성적인 개인 컬렉터의 자발적인 납세를 유도하기 위해 양도세 과세 최저한도를 현재 6,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와 함께 영국·프랑스·일본 등에서 시행 중인 상속세 물납을 허용하는 등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술품 온라인 경매 플랫폼 포털아트의 이창우 대표는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인데도 아직 국내 미술 시장은 (거래 관행이) 30년 전 그대로”라며 “(제도 개선과 업계의 인식 전환을 통해) 미술품 거래가 지금보다 더 투명해지면 자연스럽게 시장도 활성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탐사기획팀=김정곤기자 mckid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