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석규, 사람을 탐구하다..한결 같이

영화 ‘천문’서 세종 역

한석규는 사람을 탐구하는 액터이다. 머릿 속엔 ‘인간과 삶’과 관련된 질문과 사색의 연결고리가 끊임없이 솟아난다. 인간이 반응하는 모든 것에 관심을 두는 배우 한석규와의 인터뷰는 특별했다. 누군가는 ‘몽상가’로 표현할 수 있지만, 그만큼 인간의 언어, 행동, 사건 그 뒤의 모든 것에 반응하는 배우는 드물 듯 하다.

최근 삼청동에서 만난 한석규는 “최민식 형이 ‘연기는 죽어야 끝나는 공부’라고 표현할 만큼 계속 사람을 탐구해야 하는 게 액터이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인간은 반응한다. 인간이 반응하는 모든 것에 관심을 둬야 하는 게 배우이다”고 지론을 펼쳤다.


인터뷰는 한석규 배우의 머리와 가슴을 건드리는 이야기들로 다양하게 가지를 뻗어나가는 식으로 진행됐다. 세종의 어머니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함께한 동료 최민식과의 우정, 연기를 왜 계속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이어졌다.

한석규는 ’천문’에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2011) 이후 약 8년 만에 다시 세종을 연기했다. 영화 ‘쉬리’ 이후 20년간 한 작품에서 만난 최민식과 한석규의 만남만으로도 화제가 된 작품이다.

40대에 만난 세종은 이도(세종의 이름)의 아버지 이방원을 많이 생각하게 했다면, 50대에 만난 세종은 이도의 엄마로까지 생각을 펼치게 했다. 자식이 강한 왕권을 펼치도록 피를 묻힌 아버지에서, 실성하기 직전의 삶을 살았을 어머니를 그려본 한석규는 “엄마를 생각하면 삶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한석규는 “ 20대 때는 연기라는 건 남을 표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40대를 넘어가니 나를 벗어난 연기는 불가능함을 깨달았죠. 결국 연기라는 건 내가 하는 거라는 걸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왕으로 지목당한 이도가 어떤 성장과정을 지녔고, 어머니를 보면서 어떤 감정이었을지를 그려봤다고 했다. 그 이유는 “나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나는 엄마의 영향이 엄청났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세종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외삼촌을 비롯한 외가 남성들을 모두 죽였는데, 그런 일을 겪은 어머니에 대해 강한 연민과 애착을 느꼈을 것이다. 어머니가 핍박 받는 과정을 보고 엄청난 한을 품지 않았을까. 산다는 것에 직접 영향을 준 엄마라는 존재. 자식을 자식을 살리고 키워내는 건 여성, 어미의 일이지 않나. 어미의 위대함은 게임이 안 된다.”고 돌아봤다.


한석규가 이번 영화에서 맡은 세종은 관노 출신인 장영실의 재능과 천재성을 알아보고 신분에 상관없이 그를 임명할 만큼 장영실을 아낀 인물이다. 한석규는 “착한 세종은 전대 왕들을 보며 절대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세종은 ‘죽이지 않겠다’가 아니라 ‘무조건 살린다’고 생각했음”을 밝혔다.



특히 한석규는 세종과 장영실이 어떤 관계였는지, 또 둘이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지를 상상하며 캐릭터를 만들어갔는데, 30년이 넘는 우정을 자랑하는 최민식이 있어 가능했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그만큼 동시대의 많은 삶을 함께 살아냈다. 눈빛만으로도 서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 정도이다.

한석규는 “추억이 많고, 공통의 관심사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석규의 기나긴 이야기를 ‘반짝반짝’ 눈빛을 빛내며 재미있게 들어주는 사람 역시 최민식이다. 또 볼 수 있을지 모를 투샷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특히 극 중 세종과 장영실이 처소에서, 전혀 색다른 별세계를 창조해 둘 만의 시간을 갖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손 꼽힌다.

액션과 리액션의 만남이 조화로워서 가능한 장면이기도 하다. 한석규는 “연기하는 사람을 ‘액터’라고 한다”며 “연기하는 사람들은 보고 듣고 말하고 반응한다. 나는 왜 말을 할까, 뭔가 반응하기 위해, 또 표현하기 위해 말을 한다. 뭔가 나에게 온 액션에 반응해서 여기서 일어나는 뭔가가 있으니까 감정을 말하려고 하는 거다. 연기란 뭔가 반응하는 일이고, 난 평생 반응하면서 사는 거구나 싶다.”고 연기론을 설파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본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보고 엄청난 감동을 느낀 한석규는 배우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한석규는 “ 내 자신을 반응하게 만든 연기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고, 계속 갈망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만 “그 때 ‘바로 저거다’ 싶었다. 이후 연기를 하고 싶게 됐다”고 했다.

“ 지금도 계속 하고 싶고, (연기를 통해)느끼고 싶다. 그걸 느끼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니까. 시간이 흐를 수록 내가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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