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야심작으로 알려졌던 삐에로쑈핑이 출범 1년 6개월 만에 문을 닫습니다. 연매출 8조원에 달하는 일본의 대형 유통업체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한 삐에로쑈핑은 젊은 층 고객의 흥미를 끌 만한 만물상 콘셉트를 선보이며 야심만만하게 출범했지만 결국 대규모 적자를 내며 폐점을 앞두고 있습니다. 독특한 브랜딩으로 유통 업계의 희망이 될 ‘뻔’했던 ‘삐에로쑈핑’. 삐에로쑈핑은 왜 한국의 ‘돈키호테’가 되지 못했을까요.
직원 유니폼에 새겨진 이 B급 감성의 재치있는 문구는 삐에로쑈핑의 정체성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문구부터 의류, 화장품과 식품, 그리고 성인용품까지… 4만 개가 넘는 다채로운 물건이 매장 곳곳에 전시돼 있기에 직원조차 물건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 직원도 모르는 제품을 보물찾기처럼 신나게 ‘득템’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복잡하고 어지럽지만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독특한 아이디어 상품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한참 흘러 있다는 이곳, 삐에로쑈핑. 실제로 정용진 부회장은 삐에로쑈핑을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오프라인 매장의 활성화를 브랜드 목표로 둔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의 꿈은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2019년 7월, 삐에로쑈핑 의왕점과 논현점 문을 닫은 것을 시작으로 명동점 역시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폐점 소식을 알렸습니다. 이마트 측은 388평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 삐에로쑈핑 명동점의 폐점을 결정하면서 2020년까지 남은 6개의 매점도 순차적으로 영업을 종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삐에로쑈핑의 실패 원인은 결국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등 기존 유통업체들과 비교해 특별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우선 구비된 상품은 다른 곳에서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하고 가격 역시 그다지 저렴하지 못했습니다. 실제 삐에로쑈핑 명동점에 있는 상품이 같은 건물 지하에 위치한 다이소에 있는 상품과 동일하지만 가격이 더 비싸다는 소비자의 의견도 있었습니다.
삐에로쑈핑이 대다수 대형 쇼핑몰에 입점해있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일본 돈키호테의 경우 단독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는 점을 활용해 24시간 영업 전략을 내세웠고 밤늦도록 쇼핑하고 싶은 외국인 관광객의 취향을 저격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삐에로쑈핑은 쇼핑몰 문이 닫으면 함께 점포를 마감해야 했기에 24시간 영업은 꿈도 못 꾸는데다 몰의 통일성을 위해 개성 있는 점포 운영도 제한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울러 정 부회장이 내놓은 브랜드들의 ‘표절 논란’이 이어지면서 브랜드 이미지 가치가 점점 하락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로 거론됩니다.
삐에로쑈핑이 1년 6개월 만에 문을 닫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재미’라는 모호한 가치에 집착한 나머지 유통의 기본인 ‘재고관리’에 실패했다는 점이 꼽힙니다. 4만 여 개의 제품을 모두 갖춰 놓겠다는 삐에로쑈핑의 야심을 달성하려면 대규모 공간이 필요한 것은 물론 잘 팔리지 않는 제품에 대한 재고 처리와 관리에 대한 치밀한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삐에로쑈핑의 어정쩡한 가격과 어정쩡한 매장 운영 시간, 특색 없는 상품들이라는 세 가지 조건으로는 판매에 불을 붙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 부회장은 ‘재미(Fun)’라는 요소로 가격 등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삐에로쑈핑의 콘셉트인 ‘펀 앤드 크레이지(Fun&Crazy)’에 대한 소비자 반응도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일본 ‘돈키호테’와 너무 비슷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데다 일부 소비자들은 ‘재미’를 세뇌받는 분위기가 오히려 싫었다는 의견도 내놨습니다. 결국 삐에로쑈핑은 4만 개 제품이 전시될 대형 매장의 값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채 폐점 결정을 내리고야 말았습니다.
재밌는 홍보 문구와 다양한 상품으로 흥미를 끌었던 이마트의 삐에로쑈핑. 온라인으로 향하는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새롭게 시도된 유통 모델이었지만 결과는 아쉽게도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글로벌과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치열한 경쟁과 확장 속에서 새로운 유통 모델들은 계속 등장하는 중입니다. 신세계그룹 역시 삐에로쑈핑의 실패를 마중물 삼아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김한빛 인턴기자 oneligh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