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수원=권욱기자
아들을 만나러 온 전남편을 살해한 의혹을 받는 고유정, ‘한강 몸통 시신 사건’의 범행을 인정하면서 전혀 반성하지 않는 장대호, 아파트 방화로 22명의 사상자를 낸 안인득 등 지난해 전 국민을 아연실색하게 하는 사건들이다. 잔인한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경찰 다음으로 바빠지는 사람이 있다. 다수의 뉴스,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범행 동기를 분석해주는 범죄심리 전문가들이다. 이 가운데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1세대 여성 프로파일러’ ‘그알(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오는 교수’ 등 다양한 수식어와 함께 대중에게 잘 알려진 범죄심리 전문가로 손꼽힌다. 지난해 영국 BBC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에 들면서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다.
최근 경기대 수원캠퍼스에서 만난 이 교수는 “폐쇄회로(CC)TV 확대로 연쇄살인은 이제 발생하기 어렵게 됐지만 흉악범죄는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는 집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아동학대와 같은 범죄나 불특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위협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넘게 ‘범죄심리학’이라는 한길만 걸은 그가 범죄심리학자가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연세대 심리학과 1기 출신인 이 교수를 범죄심리학 분야로 이끈 것은 지난 1999년 경기대 교수로 채용되면서다.
“경기대는 유일하게 교정학과를 운영하고 있어 범죄자에 대한 접근성을 갖춘 상태였어요. 재소자의 재범 위험 등을 바탕으로 분류심사 절차를 개발하는 법무부 프로젝트에 심리학자로 참여하면서 범죄심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됐죠.”
이 프로젝트에서 이 교수는 기존 법학자들과 다른 시각에서 재소자의 위험을 분석했다. 당시 법학자들은 양형을 기준으로 살인범이 가장 위험하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살인자 중에는 초범의 비중이 높고 특별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살인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오히려 재범의 위험은 살인자보다 성범죄자가 더 높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었다. 성범죄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던 당시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전환이었다. 이 교수는 “이후 미국 텍사스주립대 교환교수로 파견 나가 1년 좀 넘게 있으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며 “텍사스는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소들이 밀집한 지역으로, 그때 거기서 본 제도와 정책들을 지금까지 활용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에서는 일찍이 심리 전문가들이 경찰과 마찬가지로 범죄 피해자를 인터뷰하고 조사하도록 하는 등 선진 시스템이 구축돼 있었다. 반면 한국은 프로파일러도 없고 범죄심리에 대한 이해도도 낮은 상황이었다. 귀국 후 2004년 경찰의 요청으로 경남 마산에서 남편을 살해한 아내와 엄마를 도운 딸을 면담하면서 이 교수는 한국의 현실을 체감했다.
“남편 시신의 일부가 사라진 사건이었는데 경찰에서 가해자가 여자고 당신도 여자니 만나서 얘기해보라고 했어요. 30년 동안 남편·아버지로부터 맞아온 모녀였어요. 그런 모녀에 대해 경찰은 ‘부부간 불화가 있던 중 앙심을 품고 남편을 살해했다’고 조서에 적었더라고요. 앙심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앙심은 대등한 관계에서 가능한 건데…. 범행 당시 심리를 이해하는 데 심리학자로서 이바지할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다는 생각이 이때 들었죠.”
이 교수는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를 바꾸는 연구에 20년 넘게 매진하고 있다. 2008년 국내에 도입된 전자발찌 제도는 이 교수의 연구가 제도로 이어진 대표적인 성과 중 하나다. 이 교수는 2008년 여덟 살짜리 초등생 여아를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이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봤다. 그는 “(다른 성범죄 사건과 달리) 피해 아동이 생존하면서 피해자가 얼마나 끔찍한 피해를 입고 살아야 하는지, 강간범을 강도만큼 취급하지 않는 게 과연 맞는지 등을 사회가 고민하게 됐다”며 “그 결과 3년 넘게 시도해도 안 됐던 전자발찌 제도가 입법화됐고, 현재는 재범률을 6분의1로 낮추며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성범죄자의 재범률을 더 낮추기 위한 제도적 대책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성도착증·소아성애증 환자 등 재범 가능성이 높은 재소자를 대상으로 형기가 끝난 뒤에도 치료 목적의 보호 감호를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범죄가 일어나기 쉬운 저녁 시간대에만 치료 감호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는 “올해 출소를 앞둔 조두순의 경우 1대1 보호관찰관을 붙여 어느 정도 재범 가능성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문제는 조두순을 1대1 보호관찰하느라 다른 보호관찰관들이 맡는 범죄자 수가 늘어나 집중관리의 빈틈이 생길 수 있다”며 보호관찰관 증원도 주장했다.
이 교수의 연구에 사회가 주목하고 관심을 기울이기까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범죄심리학을 연구하던 초창기만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범죄자 면담이 거절되기 일쑤였다.
“제가 범죄자를 만나야 위험도 정의할 수 있지 않겠어요. 제일 위험한 사람을 찾고 찾다가 성범죄로 전과 13범인 재소자를 찾아 만나겠다고 했어요. 법무부에서 2년 동안 거절하더라고요. 결국 그 재소자는 못 만났어요.”
그러나 여성이기에 더 잘 보였던 것도 있었다. 여성·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였다. 이 교수는 “강도는 목격자가 신고하면 되는데 왜 강간은 그렇게 취급해주지 않는지 불만이었다”며 “지금은 성범죄도 반의사불벌죄가 삭제됐지만 가정폭력의 경우 집에서 일어난 일을 범죄로 취급하지 않으려는 가부장적인 인식이 아직도 뿌리 깊게 있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가 최근 랜덤채팅 애플리케이션의 문제를 알리는 데 적극적인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실제로 별도의 신원확인 절차 없이 자유롭게 랜덤채팅 앱에 가입할 수 있는 구조 탓에 청소년들이 성범죄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 과거 성범죄를 저질러 관리대상인 남성이 랜덤채팅 앱을 통해 청소년을 성폭행한 사건도 있었다. 이 교수는 “전자발찌를 채워도 지리적 위치만 확인할 수 있어 전자발찌 착용자가 랜덤채팅으로 청소년을 유인해 집에서 성폭행해도 현재로서는 막을 수 없다”며 “랜덤채팅 앱을 통한 성매매 등에 제한적으로 사이버 함정수사가 가능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랜덤채팅뿐 아니라 스토킹방지법 제정에도 이 교수는 열심이다. 현행법상 국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스토킹을 해도 처벌할 수 없다. 여성이 피해자인 살인 사건의 상당수가 스토킹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스토킹을 방지하면 살인을 막을 수 있다는 게 이 교수 측의 주장이다.
여성·아동이 안전한 사회를 위해 누구보다 분주하게 뛰고 있지만 사회가 항상 뜨겁게 화답한 것은 아니다. 관련 사건이 있을 때면 반짝 관심이 쏟아지지만 금세 흐지부지된다. 이 같은 점이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그루밍 성범죄도 2000년대 초부터 입법 얘기가 나왔지만 지금까지 안 되고 있다가 지난해 관련 범죄가 알려지면서 다시 이슈가 됐다”며 “(필요한 제도가) 입법화될 때까지 계속해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했다.
다행인 것은 이 교수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교수가 처음 범죄심리학에 뛰어들 때만 해도 한 명도 없던 프로파일러가 현재 경찰에만 35명이 활약하고 있다. 이 교수가 직접 가르친 제자들도 현직에서 활동 중이다.
이 교수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당시 이춘재의 혈액형도 제대로 추출하지 못했던 우리나라지만 지금은 과학수사·범죄심리 분야에서 수사력이 월등하게 발전했다”며 “저도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올해도 계속해서 필요한 제도·정책을 언급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수원=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