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진동영기자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휩쓸며 한국 영화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는 ‘기생충’. 영화 속 주인공인 기택의 가족이 사는 어두운 반지하는 열악한 서민 주거지의 대표격으로서 영화의 주제와 분위기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러한 반지하가 생겨난 배경을 추적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반지하가 거주용이 아닌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반지하라는 공간에는 분단으로 인한 남북간의 반목부터 서울로 흘러들어 온 가난한 이주민들의 애환,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를 전전하는 청년 세대의 한숨까지 현대사의 굴곡이 담겨있는 셈이다.
◇방공호 목적으로 탄생한 반지하
1970년 정부는 단독주택이나 다세대 등의 주택을 신축할 때 지하실을 의무적으로 만들도록 건축법을 개정했다. 전시에 방공호나 진지 등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반공의 기치가 드높았던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된 건축 규제였다. 집집마다 만들어진 지하실은 처음엔 창고로만 사용됐다.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설비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1980년대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서울 등 대도시의 인구가 폭증하기 시작했고, 지하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점차 생겨났다. 불법이었지만, 주택 공급 여력이 없던 정부가 묵인한 것이다.
하지만 통풍이나 채광을 기대할 수 없는 지하는 사람이 살기에 너무도 열악했다. 이에 정부는 1984년 주택법을 개정해 지하층의 일부를 지상으로 꺼내 환기나 채광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것이 반지하의 탄생이다. 군사적 목적의 지하실 설치 의무는 1989년 삭제됐다. 하지만 주택 공급이 워낙 달렸던 탓에 1년 만인 1990년 건축기준을 완화, 다시 지하에 주거공간을 만들 수 있게 허용됐다. 1992년에는 반지하가 침수 피해에 취약한 점을 고려해 강제 배수 시설 설치도 의무화됐다. 참고로 반지하는 집의 절반 이상이 지상으로 나와 있어야 한다. 50%에서 1%라도 더 지하에 묻혀있으면 이는 반지하가 아닌 지하로 본다.
◇잦은 침수 탓에…서울시 한 때 반지하 금지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집계 결과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1.9%에 달하는 36만 3,896가구가 반지하나 지하에 거주하고 있었다. 특히 전국에서 반지하나 옥탑에 거주하는 가구 중 93.4%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반지하 대부분이 침수 피해에 취약하지만 저지대에 위치한 경우 집중호우나 태풍이 올 때마다 세간살이가 물에 잠기는 등 거주 환경이 열악하다. 실제로 침수피해 때문에 한 때 서울에서는 저지대에 반지하 주택 건축을 금지한 사례가 있다. 2010년 태풍 곤파스가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서울에서만 건물 1만 2,518동이 물에 잠기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서울시 25개 구청 중 약 절반 정도는 건축심의를 통해 반지하 건축을 제한하고 있다. 또한 주택법에서도 30가구 이상 사업승인대상은 지하주택을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다. 다만 지상 1층과 연계된 복층형은 반지하를 둘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건축 트렌드 상으로도 반지하는 점차 건축사의 뒤안길로 물러서는 사라지는 추세다. 지하를 파서 집을 만드는 데도 비용이 상당히 드는데다 필로티를 만들어 주차장으로 쓰는 것을 선호하는 건축주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새롭게 생기는 반지하는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먼 훗날 언젠가는 반지하를 역사책 속에서만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