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유 서울대 교수는 “북핵 문제가 해결돼 북한에 투자가 들어가면 공장을 석탄으로 가동하고 연탄으로 가정 난방을 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미세먼지가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형주기자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한반도는 인도 뭄바이를 넘어 세계 최악의 대기오염 지역으로 떠오를 겁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 경제가 최악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명예교수는 모두가 인정하는 4차 산업혁명 전도사다.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을 맞을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런 기자에게 그는 대기오염 얘기부터 먼저 꺼냈다. “북미회담이 결실을 보기 전에 대기오염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지금이라도 러시아와의 협상을 서둘러 북한을 통과하는 파이프를 깔고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들여오는 게 유일한 해법”이라며 “북한이 천연가스를 에너지원으로 쓰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김 교수는 에너지 전문가다. 학부 전공도 자원공학이었고 교수직도 서울대 자원공학과에서 먼저 시작했다. 에너지에 이어 산업혁명을 연구하다 보니 북한이 쏟아낼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알아챘다. 그에게 한반도 대기오염 문제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에너지를 연구하다 산업혁명 분야로 전공을 바꾼 이유가 뭔가.
△2008년에 앞으로 셰일오일과 셰일가스가 생산되기 시작하면 유가가 폭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는 이명박 정권이 자원외교를 한다며 해외유전을 사들일 때였다. 지금은 투자할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정부의 동의도, 대책도 끌어낼 수 없었다. 명색이 학자라면 아는 바를 실천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에 절망한 나머지 에너지 연구의 절필을 선언했다. 에너지 연구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산업혁명 연구에서 이뤄보자고 마음먹었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오히려 한국 경제가 무너진다고 주장했다. 근거가 있나.
△북미 회담이 결실을 내면 북한에 엄청난 투자가 들어간다. 북한이 당분간 할 수 있는 것은 봉제 등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이후 철강·조선 등 중후장대 산업으로 옮겨갈 것이다. 북한은 이 공장들을 석탄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전기나 가스를 에너지로 사용하며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가정 난방은 모두 연탄으로 할 것이다. 현재 북한의 에너지 사용량은 대략 우리의 25분의1이다. 현재도 우리 미세먼지의 10% 정도는 북한에서 유입된 것인데 북한이 공장을 돌리고 연탄 난방을 하면 한반도는 1년 365일 미세먼지에 파묻힐 수 있다.
-그렇다면 당장 우리가 동원할 만한 대책이 있나.
△오직 한 가지 대책이 있다. 러시아에서 북한을 거쳐 남한까지 천연가스파이프(PNG)를 깔고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들여오면 된다. 이때 북한에 파이프 통과료로 천연가스를 주면 북한은 저질 석탄이나 연탄 대신 천연가스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북한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러시아와 천연가스 도입 협상을 하면 되나.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 천연가스는 창고에 저장했다가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천연가스 공급이 결정되면 그때 천연가스가 매장된 지역을 정밀탐사해 매장량을 확보한다. 또 장거리 파이프라인을 깔아야 해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린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중국이 2014년 도입 계약부터 지난해 말 실제 천연가스를 공급받기까지 6년이나 소요됐으니 우리는 더 오래 걸릴 것이다. 천연가스 공급이 늦어지면 한국은 미세먼지 지옥으로 변하고 경제는 위기에 처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주제를 돌려보자. 4차 산업혁명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가치가 농업에서 창출되는 농업사회에서 물질산업(Atom Industry)에서 창출되는 산업사회로 바뀐 것이 1~2차 산업혁명이다. 물질산업과 디지털산업(Bit Industry)이 결합해 산업사회를 지식기반사회로 바꾸는 것이 3~4차 산업혁명이다. 1차와 2차 산업혁명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듯이 3차와 4차도 굳이 구분할 이유는 없다.
-4차 산업혁명이 왜 중요한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는 쇄국·개국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나라가 서구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유일하게 강대국으로 올라선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이 1차 산업혁명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6번이나 바뀌었지만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대세 하락을 지속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 중 어떤 정부도 이를 막지 못했다. 이 흐름을 다시 상승 곡선으로 바꾸려면 4차 산업혁명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나.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은 과거 중국이 1차 산업혁명에 실패한 것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중국은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졌다. 한때 청나라는 ‘팍스만추리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계 최고의 나라였다. 굴욕적인 패배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한 게 서양기술을 수용해 부국강병을 이룬다는 양무운동이다. 어느 정도 성과를 내자 청 황제인 동치제의 이름을 따서 동치중흥이라고까지 했다. 일본 메이지유신은 양무운동이 시작된 지 7년 뒤의 일이다. 그런데도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졌다. 1차 산업혁명을 일본은 성공하고 청나라는 실패한 결과다.
-청나라는 실패하고 일본은 성공한 원인은 무엇인가.
△청나라는 중체서용(中體西用) 정신으로 기존 제도는 유지하되 부국강병을 위해 서양 기술을 받아들였다. 국가 운영의 기본 틀을 바꾸지 않고 오직 기술만 배우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혼만 빼놓고 모든 것을 다 바꾸자는 화혼양재(和魂洋材)를 선택했다. 일본은 막부제를 타파하고 입헌군주제로 바꾼 데서 알 수 있듯이 기술은 물론 제도까지 완전히 바꿨다. 지금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준비는 첨단과학기술 쪽에 치우쳐 있고 제도혁신이 결여돼 있다.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정부부터 바뀌어야 한다. 공무원은 과거 경제개발 시대에 엘리트 관료로 우리나라를 이끌었다. 그런 공무원이 지금은 규제의 원흉이 돼 있다. 시대 환경은 변했는데 공무원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무원을 다시 엘리트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공무원을 제너럴리스트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스페셜리스트로 바꿔야 한다. 부처 중심이 아니라 직무 중심으로 인사를 하면 된다. 군대를 보면 사단과 군단을 넘어 공병은 공병끼리, 포병은 포병끼리 전문성 위주로 인사 교류가 이뤄진다. 이런 식으로 공무원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왜 민간이 아닌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해야 하나.
△산업혁명은 한 번도 저절로 일어난 적이 없었다. 정부가 정책으로 일으켰다. 1차 산업혁명 전까지 영국은 양털 수출국이어서 가난했다. 돈은 수입한 양털로 모직물을 짠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벌었다. 영국 정부는 양모수출금지법을 만들어 수출품의 부가가치를 올리도록 했다. 이후에는 반제품수출금지법을 만들어 완제품만 수출하도록 했다. 겨우 한숨을 돌릴 때쯤 인도에서 캘리코라는 면직물이 대량 수입됐다. 영국 정부는 캘리코 수입금지법에서 착용금지법까지 만들어 면직물 수입을 완전히 근절했다. 그렇게 되자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영국 내에서 면직물 옷을 만들게 됐고 영국은 인도보다 인건비가 비싸 자연스럽게 기계로 옷을 짜기 시작했다. 이게 정부가 정책으로 일으킨 영국의 1차 산업혁명이다.
-다른 나라는 어땠나.
△신생독립국 미국도 당시에는 목화를 수출하고 면직물을 수입하는 유럽의 경제식민지였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수입관세를 올려 유럽 면직물 수입을 막자 목화 수출길이 막힌 남부 사람들이 연방 탈퇴를 선언했다. 그래서 일어난 전쟁이 남북전쟁이다. 미국은 전쟁과 고율관세라는 정부 정책으로 비로소 1차 산업혁명에 성공했다. 후발국 독일도 일본도 모두 정부가 1차 산업혁명을 주도했다. 4차 산업혁명도 당연히 정부가 이끌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4차 산업혁명을 하면 직업이 없어진다고 얘기한다.
△단기적으로는 맞지만 장기적으로는 아니다. 다보스포럼은 2016년 직업의 미래 보고서에서 2020년까지 직업(employer)이 520만개 없어진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2018년 보고서에서는 2022년까지 5,800만개의 직업(role)이 새로 생긴다고 수정했다. 생산은 가치를 창출하는 작업이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생산에 투입되면 인간 노동에 비해 가치가 10~100배 더 창출된다. 이걸 소비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직업이 생긴다. 과거 옷을 만드는 것은 가정주부의 일이었는데 이를 공장이 담당하면서 많은 직업이 생긴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서비스 분야에서 상품화되지 않은 노동이 상품화하면서 수많은 직업이 생긴다.
-빈부격차가 심해진다는 우려도 많다.
△산업혁명 이후 부익부는 있었어도 빈익빈은 없었다. 1차 산업혁명 때 영국 도시빈민이 많았지만 그들의 삶은 농촌 중산층보다 나았다. 현대사회에서는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청년과 노인이 그렇다. 이들을 도와주려면 누군가는 일을 많이 해야 한다. 기업가들의 부익부를 막으면 안 되는 이유다. 세상에는 두 가지 부자가 있다. 첫번째 부자인 기업가는 고용을 창출해 임금을 주고 원재료를 구매하면서 매출을 일으키기 때문에 중산층을 형성하고 빈부격차를 줄인다. 기업 활동을 장려해야 하는 이유다. 두번째 부자는 부동산과 금융 부자다. 이들은 불로소득을 얻는 사람인 만큼 빈부격차를 심화시킨다. 지금 우리 사회는 두 가지 부자를 구분하지 않고 둘 다 똑같이 취급하고 있어 문제다. 존중받아야 할 부자와 그렇지 않은 부자는 구분돼야 한다.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aily.com
김태유 서울대 교수는 “북핵 문제가 해결돼 북한에 투자가 들어가면 공장을 석탄으로 가동하고 연탄으로 가정 난방을 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미세먼지가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형주기자
he is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콜로라도 CSM대에서 자원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쳐 아이오나대 경영시스템학과 교수를 지냈다.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한국혁신학회 회장, 초대 대통령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 대외직명대사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정부의 유전자를 변화시켜라’ ‘국부의 조건’ ‘패권의 비밀’ 등이 있다. 과학기술(공학)·경제학·역사학을 학문적 기반으로 현재 인류문명(국가)의 발전과 쇠퇴에 관한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