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바이오와 IT가 만나려면

■우영탁 바이오IT부 기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진행된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박람회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가 막을 내렸다. 행사 마지막 날인 지난 16일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인공지능(AI) 컴퓨팅 기업으로 성장한 엔비디아가 발표를 진행했다. 이날 킴벌리 파월 엔비디아 건강관리 담당 부사장은 “신체 내부를 촬영해 약물이 신체 내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컴퓨터로 분석할 수 있다”며 “엔비디아는 향후 유전자 데이터, 건강기록 데이터, 이미지 데이터를 AI를 활용해 통합, 정밀 의학의 꿈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제약 산업에서 데이터가 지식재산(IP)이 될 것”이라며 “데이터 원본을 공유하지 않으면서도 AI가 스스로 알고리즘을 학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헬스케어 산업에 AI와 빅데이터의 접목을 시도한 기업은 셀 수 없다. IBM의 ‘왓슨’은 암환자의 치료방법을 AI가 제시하고, 미국 아이디엑스가 선보인 ‘아이디엑스디알’은 AI가 망막 이미지를 확인하고 당뇨 망막병증 여부를 진단한다. 이 중 데이터는 AI의 피와 같다. 한국은 국가 주도 단일보험 체제를 통해 헬스케어 분야에서 수많은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했다. 의료 데이터를 전자화해 저장하는 전자의무기록(EMR) 도입률은 92%에 달하며 보건의료 빅데이터 규모도 6조건을 넘어선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 헬스케어 업체들은 해외에서 데이터를 구매해 AI 알고리즘을 개발해왔다. 규제 때문에 국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황당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 3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대통령이 통과를 촉구했는데도 반발하는 시민단체 등을 설득하느라 본회의 통과에 1년 2개월이나 걸렸다.

그 사이 수많은 스타트업이 사업을 포기하거나 해외로 떠났다. 최근 만난 AI 기반 헬스케어 업체 대표는 “성공하려면 한국 시장에 미련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가 사라지기를 기대하며 백방으로 뛸 노력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게 차라리 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역시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은퇴 이후 핀란드 정부와 협의해 AI를 활용한 원격의료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성공한 한국인 사업가가 한국을 두고 해외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발표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반발하거나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나라 법이 쉽게 바뀌지 않음을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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