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미클로스의 ‘이모그램’ /사진제공=롯데갤러리
작가 키스미클로스가 이모그램 작품 ‘나이스’를 들고 ‘볼.룸’에 앉아 있다. 전시장 전체를 1,000개의 고무공으로 채웠다. /사진제공=롯데갤러리
예상치도 못한 행운에 눈을 찡긋거리며 기뻐한다. 윙크하듯 감은 눈은 y자를 그리고, 뜬 눈은 U자를 이루며 기쁨을 드러낸다. 눈썹이 L자로 누웠고, 눈 가에 작은 k가 별처럼 반짝인다. 행운을 뜻하는 영단어 럭키(LUCKY)로 이뤄진 얼굴이다. 헝가리 태생의 디자이너 겸 미술가 키스미클로스(39)는 샛노란 둥근 얼굴에 알파벳으로 표정들을 만들고는 ‘이모그램(emogram)’이라 명명했다. 키보드(자판)의 문자·기호를 조합해 감정을 표현하는 이모티콘과 그림문자인 픽토그램을 합친 조어다.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 개장 1주년을 기념한 키스미클로스의 첫 국내 개인전이 오는 2월 23일까지 백화점 인천터미널점 내 롯데갤러리에서 열린다.
키스미클로스는 지난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참여해 폭발적 관심을 끌었다. 특히 이모그램으로 제작한 고무공으로 이뤄진 볼풀은 사진촬영지로 인기가 높아 SNS를 통해 확산됐다. 비엔날레에서는 총 13개의 감정 이모그램을 선보였지만 새해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밝고 희망적인 감정의 이모그램 7가지만 보여준다. 이모그램으로 만든 고무공을 1,000개나 제작해 방 하나를 가득 채운 작품 ‘볼.룸’에서는 관람객이 공을 만지고 던지며 ‘체험형으로’ 감상할 수 있다. ‘멋지다’는 뜻의 쿨(COOL)은 활짝 웃는 C모양의 입과 둥글게 뜬 O가 두 눈을 이루며 자신감을 보여주고, ‘용감하다’는 뜻의 볼드(BOLD)는 B와 O 모양의 눈과 D자형 입이 단단한 느낌을 풍긴다. 사랑받는(LOVED), 귀여운(CUTE), 훌륭한(GOOD) 등의 단어를 찾고 읽으며 공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가는 ‘멋지다’는 뜻의 나이스(NICE)를 좋아하는 단어로 꼽았다.
키스미클로스는 지난 2015년 옥스포드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이모지(emoji·그림문자)에 착안해 ‘이모그램’ 시리즈를 시작했다. 디지털 시대의 감정교환과 상호작용을 고민했고, 현대인들이 언어로 다 전하지 못하는 미묘한 어감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이모지를 쓰고 있음에 주목한 것이다. 방긋 웃는 노란 얼굴인 ‘스마일리’ 캐릭터는 미국 광고디자이너 하비 볼(1921~2001)이 지난 1963년에 선보였다. 볼은 당시 합병으로 의기소침해진 보험회사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스마일리 뱃지를 만들어 주면서 유명해졌다. 전시를 위해 방한한 키스미클로스는 “스마일리에서 조형적 아이디어를 얻어 이모그램을 뱃지로 만들며 하비 볼에 대한 오마주(경의)를 표했다”면서 “노란색이 행복과 따스함을 상징하기에 고수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얼굴색을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작 ‘러브 필드’는 분홍색의 부드러운 기둥들 600여 개로 이뤄졌다. 작가는 “흔히 사랑의 색은 빨강이지만 너무 강렬하다. 분홍색은 더 내밀하고 부드러운 사랑의 표현이기에 분홍을 택했다”고 소개했다. 작가는 영어를 작업에 사용하지만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국어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ㅇ은 얼굴같고 ㅡ는 어깨처럼 보인다. ㅅ은 다리 같다”는 식으로 문자를 달리 봤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신작 ‘핑크 필드’에 선 작가 키스미클로스. /사진제공=롯데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