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택의 세상보기] 세뱃돈과 인터넷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모바일 세뱃돈' 국내서도 서비스
돈 발행 줄고 결제산업 육성 장점
전통도 시대상황 맞춰 변화 필요

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수년 전 TV에서 방송한 설날에 고향 집을 찾은 가족의 모습이 기억난다. 젊은 부부가 부모님께 세배하고 용돈을 드리고 다음 차례로 손자가 조부모께 세배하자 할아버지가 방금 받은 용돈 중에서 돈을 꺼내 세뱃돈을 내준다. 어린 손자는 아무 생각 없이 그 돈을 즉시 엄마한테 넘겨준다. 눈 깜작할 사이에 애초 엄마한테서 나왔던 돈이 한 바퀴 돌아 원래 주머니로 돌아갔는데 참 우리의 독특한 세뱃돈 문화다.

중국의 설날 춘제에는 세뱃돈을 복을 부르고 액운을 막아준다는 빨간색의 봉투, 즉 ‘홍바오(紅包)’에 넣어 준다. 직접 건네주던 홍바오를 지난 2014년 텐센트그룹이 위챗을 통해 모바일로 송금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이후 알리바바가 알리페이를 출시하는 등 대형 인터넷 업체가 가세하면서 폭발적인 수요가 일어났다. 모바일 홍바오를 이용하는 중국 인구가 9억명에 달하게 됐으며 종이봉투를 대체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중국 전통인 홍바오가 인터넷에서 뜨게 된 이유는 알리바바·텐센트·바이두 등 중국의 정보통신(IT) 기업들이 모바일 결제 플랫폼의 이용자 유치 수단으로 춘제 때 홍바오 서비스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인터넷 결제회사들은 고객의 홍바오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회사의 돈으로 홍바오를 만들어 이벤트를 통해 뿌렸다. 중국판 인스타그램인 콰이서우는 중국 관영 TV의 올해 춘제 특집 프로그램을 맡아 1,600억원의 홍바오를 살포할 예정이며 다른 대형 인터넷 업체를 다 합치면 1조원가량이 될 것이라고 한다.


원래 가족·친지가 축하하며 건네던 돈이 아니라 인터넷 회사들이 명절에 뿌리는 돈이 홍바오라고 여겨질 정도가 됐다. 전통의 명절이 상업화된 데 대한 비판이 있지만 홍바오와 인터넷의 결합은 중국의 위챗페이를 국제적인 결제 수단으로 키우고 중국 전자상거래가 세계 1위로 발돋움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한국에서도 카카오페이가 모바일 세뱃돈 서비스를 시작하고 은행과 카드사가 유사한 영업을 하면서 고향을 못 찾더라도 세뱃돈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다만 아직도 반드시 현금을 이용하겠다는 비율이 35%나 되는데 인터넷 송금이 성의가 없어 보이고 새해를 맞아 기분도 좋게 깔끔한 새 돈을 준비해 직접 주는 게 낫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신용사회 시대에 현금을 찍어내 사용하는 일에는 비용이 따른다. 매년 발행하는 지폐는 액면 금액으로 35조원이고 폐기되는 돈의 가치도 4조원이 넘으며 실제 돈을 만드는 비용도 연간 1,000억원 이상으로 만만치 않다. 신권의 수요는 설 연휴 전 10일이 절정을 이루며 한국은행은 2016년 설부터 새 돈 덜 쓰기 운동을 벌여 2년 동안 400억원의 비용감축 효과를 거뒀다. 모바일 세뱃돈이 보편화하면 훨씬 더 큰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설날 세배 문화의 전통을 고수해야 인간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최근 한 신발회사가 만든 홍바오에 관한 동영상을 봤으면 한다. 스마트폰으로 들어온 홍바오를 거절하는 장면이 잠깐 나오는 이 영상은 춘제를 겨냥한 마케팅임을 고려하더라도 현대 감각을 전통에 잘 접목하면 고유의 가족 간 정감과 아울러 삶의 재미가 더 쌓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좋은 예절인 세배는 드리도록 하되 온 가족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 시대에 맞게 세뱃돈 문화도 바꿀 필요가 있다. 어른들한테 뺏긴다는 인식을 심는 현금 대신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도록 모바일 상품권을 보내주거나 저축이나 펀드 계좌로 넣어주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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