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종로는 서울시 전체 판세의 풍향계로 작용한 스윙 보터 지역으로 분류된다. 이종훈 정치 평론가는 “종로구 연령층을 보면 상대적으로 서울의 다른 지역구에 비해 고령층이 많다”며 “구시가지이기도 하고 아파트 비중도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적기에 보수 세가 강하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종로 지역은 보수 정당이 제 12대 총선부터 18대 총선까지 연승을 거둔 바 있다.
그러나 19대 선거에서부터 보수 세가 조금씩 옅어지며 여권이 2연승(정세균 국무총리)을 해 승기를 뺏어왔다. 최근 들어 스페이스 본, 경희궁 자이 등 종로 지역에 신축 아파트·주상복합 단지가 들어서 젊은 층이 유입되며 진보 진영에 유리한 지형으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나 여권에서는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 4·15 총선 공동 상임 선대위원장직과 서울 종로구 출마를 수락한 이낙연 전 총리가 24일 오후 종로구 통인시장을 방문하고 있다. 한 가게에 이 전 총리가 예전에 방문한 사진이 붙어 있다./연합뉴스
■보수 성향 강한 종로…與 “정세균·이낙연 아니면 힘들어”
이낙연 전 국무총리에게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종로 출마를 제안한 것도 보수 세가 상대적으로 강한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권의 전략적 판단이 녹아있다. 종로 지역에서 두 차례 당선됐던 정 총리는 쌍용 그룹 임원 출신으로 풍부한 기업 경험을 가진 데다 노무현 정부 시절엔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민주당 소속이지만 일부 사안에 있어 중도~보수 쪽에 가까운 입장을 보이며 중도 진영을 아우를 수 있는 인물로 평가돼왔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이 전 총리가 정 총리에 이어 중도 보수층을 일정 부분 아우를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종훈 평론가는 “(보수 세가 강한 종로에서) 정세균 총리가 정도가 (구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치”라며 “이 전 총리가 그나마 색깔이 비슷한 편”이라고 분석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24일 오후 종로구 통인시장에서 한 시민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파란색 ‘깔맞춤’한 이낙연, 통인시장 돌며 새해 인사
이 전 총리는 당의 제안에 따라 23일 종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전날 용산역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우리의 역사와 얼이 응축돼 숨 쉬는 ‘대한민국 1번지’ 종로에서 정치를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라며 “신뢰와 품격을 유지하며, 겸손하고 성실하게 선거에 임하겠다. 국민 여러분의 꾸지람과 가르침을 늘 겸허하게 받겠다”고 말했다.
설 연휴 첫날인 24일에는 종로 골목시장 곳곳을 돌며 새해 인사를 했다. 남색 점퍼와 파란색 운동화 차림의 이 전 총리는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며 시민들과 셀카를 찍고 골목시장 상인들을 만나 민원을 듣기도 했다. 상인들은 “종로구 발전을 위해서 많이 해주시라”고 말했고, 이 전 총리는 “많이 파시라”고 덕담했다. 창신 골목 시장 상인회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는 아케이드 (비 가림 지붕) 설치를 돕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국회에서 검찰 인사 관련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정중한 초대’했지만…응답 없는 황교안
지난 23일 이 전 총리는 종로 지역 출마 선언 기자 간담회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맞붙는 ‘빅 매치’ 가능성에 대해 “상대 당의 결정에 대해 제가 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면서도 “제 개인의 마음을 말하자면, 신사적 경쟁을 펼치고 싶다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그간 말을 아껴왔던 이 전 총리가 출마 선언과 함께 황 대표와의 정면 승부를 피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황 대표는 확답을 피하고 있다. 황 대표는 “공천관리위원회가 구성되면 판단할 것”이라는 원론적 수준의 답변을 내놓으며 종로 출마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당 공천관리위원인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앞서 “전략 공천 1호는 반드시 황 대표의 종로 출마가 돼야 한다”고 말하는 등 당 차원에서 황 대표가 종로 지역에 출마해야 한다는 여론이 분출되고 있지만, 황 대표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모색하며 신중을 기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에 김무성 한국당 의원이 황 대표를 겨냥해 공개 비판을 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22일 “이 전 총리가 출마한다니까 (한국당에서) 겁이 나서 아무도 나가는 사람이 없다”며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이 끝까지 용기 있게 붙어서, 지는 한이 있어도 덤벼야 국가 지도자가 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황 대표가 종로가 아닌 용산 또는 비례대표로 출마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지만, 이 전 총리가 전날 종로 출마와 선거대책위원장직을 모두 수락하며 황 대표의 운신의 폭은 한껏 좁아진 것으로 보인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 전 총리가 신사적 경쟁을 하자며 사실상 선제공격을 한 상황에서 종로 출마를 피할 경우 황 대표가 우스워질 가능성이 높다”며 “어찌 됐든 이 전 총리가 종로 출마를 선언하며 지역구를 돌아다니고 있는 만큼 보수 진영 입장에서는 황 대표든 누구든 대항마를 가능한한 빨리 내세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정연기자 ellenah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