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폐렴 직격탄 동대문 "제품·원단 확보 못해 폐업 공포"

中직원 많아 동대문 상인들 초긴장
의류 부자재 대부분 우한서 생산
장기화땐 공급 차질·가격 상승 우려
사실상 중국내 유통도 올스톱 위기

29일 오후 동대문역 인근에서 마스크를 낀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박형윤 기자

29일 오후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던 동대문 밀리오레 여성복 매장이 한산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박형윤 기자

29일 오후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던 동대문 밀리오레 여성복 매장이 한산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박형윤 기자


“지난 메르스 발병 때 개미 한 마리 안 지나다녔습니다. 그때 매출이 80% 줄었어요. 그 이후 또 사드 사태가 터져서 중국 수출이 어려워졌고 잠잠해지는 듯하더니 이제는 우한 폐렴까지 터졌네요.” 한영순 동대문 패션 상인연합회 회장이 전한 K-패션의 중심지 동대문은 우한 폐렴에 대한 공포가 차오르고 있었다. 한국말보다 관광객으로 인해 중국어가 더 많이 들리는 듯한 동대문 시장의 상가 직원 대부분이 마스크를 낀 채 일을 하고 있는 모습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병에 옮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넘어 향후 매출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더 깊어 보였다.

한 동대문 연합회 회장은 설 연휴가 끝난 29일 회의를 소집해 우한 폐렴 관련 점검 사항을 공지했다. 중국인 아르바이트생이 많은 동대문 시장 특성상 설 명절 때 중국을 다녀온 직원들이 있는지, 혹시 직원들 중에 감기가 걸린 사람이 있는지 체크부터 시작했다. 한 회장은 이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다행히 전수조사 결과 중국인 직원 중 우한폐렴 증상이 있는 직원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곳 동대문은 음식 배달하는 직원부터 각 점포 직원들까지 중국인 비중이 높아 매우 불안해 하고 있다. 한 명이라도 확진자가 나온다면 동대문 시장 자체가 문을 다 닫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한 폐렴 사태로 인해 영업에 직격타를 받는 곳은 동대문종합시장에서 의류 부자재 도매업을 하는 상인들이었다. 동대문종합시장에서 만난 A씨는 “레이스와 지퍼, 단추 등 의류 부자재의 최대 생산 공장이 우한에 있다”며 “우한에서 물건들을 많이 들여오는데 사태가 장기화되면 물품 조달이 힘들어 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한에서 넘어온 물품에 혹시 바이러스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평화시장에서 도매점을 하는 B씨는 “겨울이 따뜻해서 겨울 장사도 잘 안됐다”며 “우한 폐렴이 봄에 더 절정에 이를 것이란 얘기도 도는데 봄 장사도 힘들어질지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우한 폐렴으로 인해 동대문 시장 단가가 오를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밀리오레에서 소매점을 하는 C씨는 “직접 중국에 가서 물건을 떼오는 분들은 발이 묶인 상황”이라며 “봄 상품 등은 아직 재고가 남아있지만 사태가 장기화 돼 도매에서 공급이 딸리면 소매 단가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공급에 의존하는 국내 대형 온라인 쇼핑몰도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의류스타트업 김동진 이스트엔드 대표는 “여성 온라인 쇼핑몰 중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곳들은 중국에서 물건을 들여와 파는 비중이 높다”며 “많으면 하루에 1,000여개 정도 나가는데 중국에서 생산이 막히면 한국으로 생산라인을 돌려야 하는데 제기동 등 한국 공장에서는 이같은 대규모 생산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내다봤다.

동대문 등 한국 패션업계뿐 아니라 중국 현지에서 도매 대행을 하는 국내 업체는 직접적인 피해를 받을 전망이다. 광저우에 지사를 둔 이태원 소재 패션 대행업체의 한 대표는 “춘절 연휴가 끝나고 2월 8일쯤이 되어야 택배사들이 정상적으로 움직일 것 같다”면서 “현지 배송이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보통 춘절이 끝나면 한국 담당자가 중국으로 넘어와 생산과 관련된 사항을 확인하는데 이런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공산이 커졌다”고 말했다.

도매 대행업체 관계자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광저우 원단 시장도 잠정 폐쇄 수준”이라면서 “춘절 휴가가 2월 14일까지인데 언제 열릴지 모르겠다고 연락 온 상황이라 자칫하면 돈이 묶이고 봄 신제품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과 홍콩에서 옷을 수입해 파는 매장의 대표는 “봄 신상을 수입하기 위해 가려던 홍콩 출장을 취소했다”며 “3월까지 팔 물건이 없어서 겨울 재고 처리만 해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대기업 계열의 패션회사도 이번 사태의 장기화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광저우, 상하이 등지에 공장을 둔 한 패션 대기업은 “대부분의 봄 신상품을 1월 말부터 물류센터에서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영향은 적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추가 신제품을 공급받을 때는 영향을 끼칠 수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형윤·허세민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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