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대한 은유로 읽혔던 책이 적나라한 현실이 돼 일격을 가할 때가 있다. 전염병이 뉴스를 장악하고 마스크 쓴 사람들이 거리를 메울 때면, 지독한 디스토피아 소설로 여겼던 ‘페스트’가 목전에 닥친 것을 본다.
소설에서 페스트가 창궐한 오랑시는 계엄령으로 봉쇄된다. 도시는 지옥으로 변하고 죽음은 평온했던 날의 빨래처럼 여기저기 널려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살아가는 사람, 살려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에게 페스트는 ‘끝없는 패배’라 고백하면서도 병상을 지키는 의사
리외가 있고 백 마디 지당한 언설보다 행동하길 택하는 시청직원 그랑이 있다. 그리고 ‘의지와 긴장’이 결국 페스트를 이길 수 있는 인간의 무기임을 깨우치는 타루가 있다. 재앙의 가장 무서운 적은 ‘방심’이다. 마음을 놓는 것, 나는 그래도 된다고 믿는 것, 피곤한 온갖 절차와 과정을 슬쩍 피해가려는 모든 행위가 바로 최악의 바이러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섭게 확산되고 있다. 카뮈는 ‘인간의 구원’ 같은 거창한 문제보다 절박한 것은 결국 ‘인간의 건강’이라고 썼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