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부터 불거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의혹을 두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진보와 보수 진영으로 갈려 홍역을 앓고 있다. 검찰개혁을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는 쪽과 정권비리 수사를 방해하지 말라는 쪽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박근혜 정권 탄핵에서 촉발된 진영 간 갈등에 다시 불이 붙어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태다.
이념대립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사건의 본질이 가려지는 것은 안타깝다. 대통령의 최측근이 범죄를 자행했다는 의혹은 팩트(fact)다. 조 전 장관의 부인과 동생, 조카가 구속될 만큼 사법부도 범죄 혐의를 인정했다. 사회 고위층의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 사례다.
그러나 청와대는 검찰개혁과 대통령 인사권에 정면 도전하려는 수사권 남용을 운운하며 발뺌하려는 데 급급한 인상이 강해 보인다.
최근에는 추미애 신임 법무부 장관을 통해 수사팀의 지휘라인을 교체하는 보복인사를 강행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한 초유의 감찰권 발동까지 거론하며 검찰을 흔들기 시작했다. 피의자 신분임에도 두 차례 검찰 인사를 총괄한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기소 후에도 현직을 유지한 채 버티기에 들어갔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됐던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박근혜 정부의 고위공직자가 대부분 검찰 수사 단계에서 사퇴하고 조사받은 것과는 전혀 다른 행보다. 청와대가 도덕적 불감증에 걸렸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문제는 둔감 너머 불감(不感)이다. 도덕불감증, 성(性)불감증, 도박불감증, 안보불감증 등이 세간·일상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설날이던 지난 25일 동해시 한 펜션에서의 가스폭발 사고가 ‘안전불감증’에서 촉발된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사망 6명을 비롯해 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보면 죄질이 중하다. 게다가 무허가 시설, 다가구주택에서 버젓이 불법영업을 했다니 괘씸하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사불범정(邪不犯正)이 통하게 하는 철퇴 조치를 취할 경우다.
사회 고위층일수록 법치를 중시하지만 달리 말하면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법을 활용하려 한다. 문제는 법치를 과잉해석해 법망만 피하면 잘못이 없다는 발상이다. 죄를 지으면 반성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빠져나갈지만 고민하는 것이다. 도덕 불감증 경계를 호소한다. 투철한 도덕정신과 솔선수범을 통해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되는 사회 고위층이 풍성해지면 좋겠다. h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