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억 덫'에 걸린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 9억 넘겨 절반이 '고가주택'
12년째 머문 '기준' 논란 예고
9억 초과땐 각종 조세·대출 규제
"기준 현실화 필요" 목소리 커져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고가주택 기준인 9억원을 넘겼다. 서울 아파트의 절반 가량이 정부에서 정한 고가주택이 된 것이다. 최근 들어 강남권을 중심으로 아파트값 상승 폭이 둔화 되고 있지만 일부 초고가 단지에서는 여전히 신고가가 나오는 흐름을 고려해 볼 때 중위가격이 9억원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은 매우 적다. 문제는 고가주택 기준이 12년 째 그대로라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9억원 이상 주택을 대상으로 규제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고가주택 기준이 적정한 지를 놓고 논쟁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 중위가 9억 넘었는데, 12년째 변함없는 기준
= 30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1월 서울 아파트의 중위가격은 9억 1,216만원을 기록하면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았다. 중위가격은 매매가격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있는 가격을 말한다. 대략 서울 아파트의 절반 가량이 고가주택이 된 셈이다.


현 정부가 출범한 지난 2017년 5월. 당시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6억 635만원에 불과했다. 2년 반가량 동안 중간 가격이 3억원 이상 치솟은 것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같은 기간 강남 11개 구 중위가격은 7억 5,179만원에서 11억 4,967만원으로 4억여원, 강북 14개 구의 경우 4억 3,552만원에서 6억4,274만원으로 2억원 가량 올랐다.

상황이 이런데도 고가주택의 기준은 10년이 넘도록 그대로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권 당시 1주택자 양도세 부과 기준을 종전 6억원 초과에서 9억원 초과로 높인 것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2008년 12월 기준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4억 8,084만원으로 현재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시세가 2배 가까이 오른 만큼 고가주택 기준도 상향돼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9억원 초과에 몰린 규제, 현실화 논란 재점화 = 9억원 초과 여부는 조세·대출을 비롯한 각종 정부 규제의 적용 여부를 가르는 주요 판단 기준 가운데 하나다. 정부는 각종 규제를 통해 고가주택인 9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 여러 제재를 가하고 있다. ‘12·16 대책’으로 인해 시세 9억원 초과 주택 보유자는 전세대출 자체를 받을 수 없다. 3월부터는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9억원을 넘는 주택을 매입할 때 15종의 증빙서류까지 제출해야 한다. 공시가격 9억원을 넘으면 보유세 부담도 껑충 뛰도록 제도를 만들어 놨다.

전문가들은 고가주택 기준을 현실화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고가주택 여부에 따라 세금이나 대출 등 정책 운용 방향이 크게 달라진다”며 “최근 시장을 반영해 서울의 경우 고가주택 기준을 높이고, 지방은 낮추는 등 지역 시장 여건에 따른 조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정부는 현행 기준을 변경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표면적으로는 집값 안정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기준 완화 시 세금이 줄어드는 등 세수 감소가 불가피 하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고가주택 기준을 높이면 그만큼 세수가 줄어든다”며 “정부는 오히려 고가주택 기준을 더 낮추는 것을 고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권혁준기자 awlkw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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