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공중전에 참가한 중국 전투기.
질문 두 가지. 첫째, 항공모함이 처음 투입된 실전은 언제 어디일까. 둘째, 한국인 조종사가 최초로 참전한 전투는 어디일까. 답은 동일하다. 1932년 중국 상하이. 일본인 승려 습격 사건을 빌미삼아 상하이에 상륙(1월28일)한 일본군 6,000명은 항공전력의 도움까지 받았다. 1만5,000톤급 수상기 모함 노도로(能登呂)에 탑재한 14식 수상정찰기 8대가 폭탄으로 무장해 중국군 진지를 때렸다. 상하이 지역을 방어하는 중국군 19로군은 2선급으로 평가받는 부대였으나 분전하며 버텼다.
밀고 밀리던 전황은 일본의 지원함대가 도착하면서 급격히 기울어졌다. 세계 최초의 정규 항공모함인 호쇼(鳳翔·1만500톤), 당시 세계 최대 항공모함 가가(加賀·4만2,500톤)와 경순양함 3척, 구축함 4척 등으로 구성된 일본 기동함대는 연일 함재기를 출격시켜 기총소사와 폭탄을 퍼부었다. 중국도 만만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전국에서 전투기를 긁어모아 일본에 맞섰다. 1932년 2월5일 일본 함재기 5대와 중국 전투기 9대가 공중전을 펼쳤다. 아시아 최초 공중전의 결과는 무승부. 양측이 손실 없이 물러났다.
일본은 개전 초 중국의 항공력을 얕잡아봤다. 그럴 만했다. 상하이사변보다 4개월여 앞서 터진 만주사변에서 중국 군벌 가운데 최대의 공군력(약 300대 보유)을 자랑하던 장작림 군벌은 비행기를 띄우지 못한 채 관동군에 빼앗겼으니까. 상하이 인근에 전개된 중국 공군은 독일제와 미국제 전투기로 일본에 맞서다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말았지만 최소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상하이사변은 한국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만주사변과 상하이사변, 만주국 건국으로 일본에 당하며 패배감에 젖어 있던 중국인들에게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권 폭탄 투척 의거(1932년 4월29일)는 깊은 인상과 감동을 남겼다. 중국은 이후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상하이 항공전은 우리가 망각해버린 자긍심이자 유산이기도 하다. 조선인 최초의 여성 조종사인 권기옥(당시 31세·1988년 작고)이 상하이 방어 항공전에 참전한 기록이 있다. 이제 기네스북을 바꿀 때다. 기네스북에는 세계 최초의 여성 전투조종사로 1936년 실전에 투입됐다는 터키의 사비하 괵첸(Sabiha Gokcen)이 등재돼 있으나 진짜 주인공은 한국의 권기옥이다. 터키의 국부로 숭앙받은 아타튀르크의 양녀인 괵첸의 이름은 이스탄불 인근 국제공항에 남아 있건만 우리는 ‘공군의 어머니’라고도 불렸던 권기옥을 잊어간다. 후대에 물려줄 역사의 복원은 우리 시대의 과제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