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볼 수화공연은 청각장애인 저항 표출"

아시아인 최초 무대 선 한인2세 크리스틴 선 김 NYT 기고
"장애인 공동체 기여할 기회 판단
애국심·자긍심 갖고 공연 했지만
실제 방송에 나간 건 불과 몇 초
투쟁 기회 잃어버려 너무 화 나"

슈퍼볼에서 수화 공연을 하고 있는 크리스틴 선 김. /미국 청각장애인협회 유튜브 캡처

“슈퍼볼 공연은 청각장애인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인 만큼 감격스러웠지만 실제 방송은 몇 초에 불과했습니다. 엄청난 실망을 했습니다.”

미국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미국프로풋볼(NFL) 결승전 ‘슈퍼볼’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수화 공연을 선보인 한인 2세 크리스틴 선 김(사진)씨는 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기고를 통해 공연 이후의 소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온 미국민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무대에 섰다는 기쁨에도 불구하고 청각장애인들의 저항을 표출하기 위한 공연이 제대로 방영되지 않은 데 대한 좌절도 동시에 맛본 탓이다.

자신을 이민자의 자녀, 청각장애를 가진 유색인종 예술가로 표현한 김씨는 이날 ‘왜 슈퍼볼에서 청각장애인 시청자를 위해 공연했는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나라, 그 핵심에는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시민들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나라를 기리고 싶었기 때문에 초청에 수락했다”고 공연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미국 국가와 전통가요인 ‘아름다운 미국(America the Beautiful)’ 두 곡을 수화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의 자긍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공연을 중계하던 폭스스포츠가 공연자인 김씨 대신 선수들의 모습을 담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 탓이다. 김씨는 “TV와 모바일로 시청하는 사람들은 공연의 대부분을 보지 못했다”며 “방송에는 불과 몇 초만 보여줬을 뿐 대부분의 시간은 선수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있었다”고 지적하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 “청각장애인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돼 감격스럽고 흥분돼 있었던 만큼 너무나 화가 났다”며 “대규모 언론에 노출되기 위한 저항과 투쟁의 기회를 상실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김씨는 무대에서 의사소통을 제대로 못해 경찰에게 구타를 당하거나 총을 맞고 숨지는 등 미국에서 장애인이기에 받아야 했던 갖가지 차별과 폭력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유색인종이라는 점은 자신에게 특히나 국가 보건 서비스와 고용 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회고했다. 다만 그는 슈퍼볼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모인 곳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권리 역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자신의 수화 공연이 유색인종 장애인을 둘러싼 여러 겹의 고정관념을 깨고 더 많은 사람이 행동하도록 만들기를 바란다”며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부모처럼 ‘모든 언어’와 ‘모든 정체성’을 존중하기를 바란다”면서 기고를 마무리했다.

김씨는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출신인 선천적으로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로체스터공대를 졸업하고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출판 업계에서 일하다 2008년 소리를 주제로 한 예술작품을 보고 사운드 아티스트가 됐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그는 음악과 언어·수화를 모티브로 한 회화·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펼치며 ‘소리를 활용하는 최고 예술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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