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독립된 위치에서 엄정 수사한다는 본연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적 중립성이 확보돼야 한다. 하지만 올 7월쯤 출범하는 공수처를 준비하는 단계부터 중립성과는 거리가 먼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5일 공수처준비단 단장에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캠프 자문그룹에 참여했던 남기명 전 법제처장을 위촉했다. 남 단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법제처 차장에 이어 2007년 법제처장에 임명됐다. 남 단장이 법제처장 임명장을 받을 당시 옆에 서 있던 청와대 비서실장은 문 대통령이었다. 남 단장은 2007년 9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고려인 중앙아시아 정주 70주년 기념행사’에도 참석했다. 남 단장은 지난 대선 직전인 2017년 2월 문 후보의 자문그룹인 ‘10년의 힘 위원회’에 참여했다고 복수의 언론들이 보도했다.
총리실은 “남 단장은 공수처 설립 취지를 잘 이해하고 있는 분으로 후속 법령과 각종 규정 정비 과정에서 전문가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권력기관인 공수처의 틀을 짜는 설계자에 법조인 출신이 아닌 인사를 임명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가 관계자들은 “문 대통령과의 인연이 이번 인선에 작용한 것 아니냐”면서 남 단장을 ‘친노 인사이자 친문 인사’로 규정했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공수처 관련 법령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준비단장에 코드 인사를 임명하면 정권은 감싸고 야당을 때리는 ‘친여 보위부’ 같은 공수처로 변질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인선은 문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공수처 준비 과정부터 객관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과도 배치된다. 수많은 논란 속에 문재인 정권이 밀어붙이는 공수처가 준비 단계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출발하고 있어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