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창수 주가봉대사
아프리카 중서부 기니만에 위치한 가봉의 열대우림 속 랑바레네시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아프리카의 성자’로 불리는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가 의료봉사를 하던 병원이 아직 있다.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 의료봉사에 몸 바치기로 결심하고 37세인 지난 1913년 랑바레네 오고우에(Ogooe) 강변에 정착해 병원을 세워 아픈 환자들을 돌보다 1965년 이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이후 세계 각지에서 답지하는 기여금으로 슈바이처병원 국제재단이 병원을 계속 운영하고 있고, 같은 병원 부설 랑바레네 의학연구소는 아프리카 전염병 전문 연구소로 발전했다.
슈바이처 박사도 초기에는 피부색·언어·생활·관습이 모두 다르고, 뿌리 깊은 주술 치료에 의지하던 현지인의 마음과 신뢰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슈바이처 박사는 그저 낮은 마음으로 아픈 병자들의 친구와 좋은 이웃이 되고자 했으며, 결국 현지인들이 슈바이처 박사를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게 됐다고 한다. 이는 그가 가진 현대 의술이나 학식 때문이 아니라 맑은 시선과 조용한 미소, 따뜻한 손길, 묵묵히 보여주는 행동에 의해 마음과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가봉인들은 아직 그를 가슴 깊이 존경하며 기리고 있고, 슈바이처 병원은 전 세계 의사들의 봉사 성지가 됐다.
아프리카는 슈바이처 박사가 활동하던 1960년대 이후에도 가난과 질곡의 역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아프리카는 2000년 이후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대륙(4.6%)이고, 30세 이하 인구가 70%를 넘는 두텁고도 젊은 소비 시장이 됐다. 미국·중국 등 주요국들은 날로 성장하는 미개척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앞다퉈 아프리카 외교를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가봉도 석유·망간·목재 등이 풍부한 자원부국인데다 ‘부상하는 가봉(Gabon Emergent)’이라는 야심 찬 발전 전략을 적극 추진 중이고, 무엇보다 60년 전 원조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우리나라의 발전 경험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서구에서 처방한 발전 전략을 무조건 따르고 일방적 원조에만 의존하다 뼈아픈 실패를 거듭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랑바레네 의학연구소의 셀리기 아그난지 소장도 유럽이 개발한 감염병 백신이 유럽인에게는 90%의 효과가 있지만 아프리카에 오면 40%로 떨어진다면서 첨단의료 기술조차 현지 실정에 맞게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열대우림 지역에서는 건강과 안전을 담보할 의료 인프라 구축이 외국인 투자 유치와 경제 개발을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가봉은 앞선 개발경험과 높은 의료 수준을 가진 한국이 자국을 지원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필요할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있듯이 상대의 어려움과 아픔을 진심으로 함께하고, 상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머리를 맞대고 함께 모색할 때 진정으로 마음이 열리고 양국 간 협력도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주가봉 대한민국대사관은 가봉과 다양한 의료 협력과 우리 의료진의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슈바이처 박사는 젊은이들에게 눈에 보이는 병원 건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면의 선한 의지를 믿고 이를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이며, 누구나 저마다의 랑바레네를 마음속에 건설할 것을 당부한 바 있다. 국가 간 외교도 사안에 따라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나뉘는 분야가 있지만, 의료는 상생 협력이 가능한 인도적 분야로서 이를 통해 다른 분야로 협력이 확대되는 마중물이 되기도 한다. 아무쪼록 우리 의료진과 봉사원들이 펼치는 활동이 가봉에 제2·제3의 랑바레네 미담으로 남아 기억되고, 오랜 친구 나라로서 양국 간에 계속될 협력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