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동정책 시간표 내라" 한국노총, 여당 압박

최저임금 1만원·ILO 핵심협약 등 6개 정당에 공개질의서
기업에 부담 큰 정책들...총선 앞두고 사실상 민주당 타깃
양대노총 현안 공동대응 강화...文정부 후반 노정 격랑 예고

김명환(왼쪽 두번째) 민주노총 위원장과 김동명(〃 세번째) 한국노총 위원장 등 양대노총 지도부가 10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상견례를 한 가운데 김동명 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성형주기자

한국노총이 총선을 두 달여 앞두고 6개 정당에 ‘노동사회정책 공개질의서’를 전달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실현, 복수노조 자율교섭 보장, 근로기준법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등 기업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정책에 대해 입법 시간표까지 자세히 물었다. 강경 노선을 천명하며 민주노총과 공조를 강화하는 동시에 정책연대를 맺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압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노총은 10일 민주당·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정의당·평화민주당·바른미래당에 ‘총선 노동사회정책 관련 공개질의서’를 전달했다. 한국노총은 공개질의서를 통해 각 정당의 정책공약을 평가해 오는 26일 개최되는 정기 대의원회의에서 다뤄질 총선 방침에 반영하겠다고 설명했다. 한국노총은 산하 조직과 현장에도 결과를 홍보해 총선 지지 후보 결정에 대한 기본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재계에서 ‘기업활동 위축’ 가능성을 들어 강하게 반대하는 정책이 대거 들어갔다. △특수고용노동자·플랫폼노동자·구직자의 단결권 보장 △복수노조 자율교섭 보장 △산별교섭체계 확립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선 비준 후 제도 개선) △1년 미만 근속자에 대한 퇴직급여 보장 △근로기준법상 구조조정 요건 및 절차 강화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실현 △근로기준법 적용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최소 45% 이상으로 상향 △임금분포공시제 등이다.


한국노총은 항목당 정당의 입장을 ‘동의’ ‘검토 필요’ ‘반대’ ‘입장 없음’ 등으로 표기하되 동의하는 경우 입법 발의와 개정 목표 일정을 함께 제출하도록 했다. 한국노총은 6개 정당에 질의서를 보냈지만 타깃은 사실상 ‘민주당’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1만원, ILO 핵심협약 비준, 임금분포공시제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주요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최저임금의 전년 대비 상승률이 2.9%(8,590원)로 결정되면서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사실상 폐기된데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야당의 반대로 20대 국회 내 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당 등 보수정당은 ‘검토 필요’나 ‘반대’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민주당에 ‘공약을 지킬 것이냐 말 것이냐’를 묻는 모양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민주당에 압박이 될 것이라는 점은 인정한다”며 “다만 정책연대를 파기하거나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야당인 한국당 등에서 ‘폭력노총’으로 도외시됐던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의 ‘강성 선회’를 내심 반기는 눈치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민주노총을 방문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지도부에 대한 환영사로 “촛불정부의 노동개혁 후퇴가 멈출 줄 모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자의적 판단 속에서 노동시간 단축의 법 취지를 무력화하는 조치를 일삼고 있다”며 “노동자와 함께, 한국노총과 함께 대응해야 한다. 구체적인 방안과 공동대응 일정도 잡겠다”고 말했다.

김동명 위원장은 “21대 국회가 곧 구성되는 중요한 시점에 민주노총에 왔다”며 “정말로 노동문제를 해결하고 사회 갈등을 해결하려면 노동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신임 위원장과 사무총장이 강성이라는 정부와 정치권의 평이 있는데 실제로 맞다”고도 말했다.

양대노총 위원장은 19일 서울행정법원에 ‘경영상 사유’로 요건을 확대한 특별연장근로 시행규칙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함께 제기할 예정이다. 양대노총은 이날 상견례에서 △최저임금 차등적용에 대한 공동 투쟁 △불평등 양극화 해소 △플랫폼 노동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대해 공동 대응 방안을 강구해나가기로 합의했다.

문 대통령 임기 후반부를 맞아 노정관계는 더욱 격랑 속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노총이 ‘강성 노선’을 택한 것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을 내줬지만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파기됐다며 문재인 정부에서 ‘받은 게 없다’는 내부 비판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양대노총이 우선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위해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에 대해 공조할 것”이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중국과 국내 경기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경기 진작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많아 노정관계가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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