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IP)TV 중심의 유료방송 3강 체제 개편에 따라 몸집 불리기를 위한 추가 인수합병(M&A) 2라운드가 예고되면서 사려는 통신사들과 팔려는 종합유선방송(SO) 사업자 간 팽팽한 눈치싸움 국면이 시작됐다. 유료방송 내 주도권이 IPTV로 기운 이상 시간이 지날 수록 SO들은 제값 받기가 점점 어렵기 때문에 통신사에 유리한 구도로 보인다. 그러나 M&A 양상에 따라 3강 구도가 깨지고 다시 ‘1강 2중’ 체제가 될 수 있는 만큼 통신사들로서는 경쟁사보다 한 발 앞서야 한다는 부담이 커 SO들의 협상력도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따르면 지난 달 2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SK텔레콤(017670)의 자회사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합병을 최종 승인하면서 국내 유료방송 시장은 KT(030200)·KT스카이라이프(점유율 31.31%)와 LG유플러스(032640)·LG헬로비전(24.72%), SK텔레콤(24.03%)의 3강 체제가 확립됐다. 이에 따라 시장의 관심은 다음 M&A로 옮겨갔다. SO 1위 CJ헬로(037560)와 2위 티브로드가 모두 IPTV와 한 배를 타면서 다음 순위인 점유율 6.09%의 딜라이브와 CMB(4.73%), 현대에이치씨엔(126560)(4.07%)이 유력한 차순위로 거론된다.
딜라이브는 지난해부터 KT가 공개적으로 인수 의사를 밝혔다. 다만 특정 유료방송의 점유율을 33.3%로 제한하는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완벽히 해소되지 않으면서 물밑 작업만 이어오다 소강상태다. 규제를 해소할 국회는 이미 총선 국면에 접어들어 KT의 발목을 풀어줄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 KT 내부적으로도 최고경영자(CEO) 교체기인 만큼 당분간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기대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한편으로는 이 같은 상황이 외려 긍정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앞서 기업 결합에 나선 LG유플러스와 LG헬로비전, SK텔레콤과 티브로드가 M&A를 통해 얼마나 시너지를 내는지 검토할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KT에서도 딜라이브 인수 자체를 재검토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딜라이브를 KT가 인수한다고 단정하기도 일러 보인다”고 전했다.
CMB와 현대에이치씨엔도 단골 M&A 대상으로 오르지만 여전히 소문만 무성하다. 현대에이치씨엔은 최근 SK텔레콤에 인수된다는 얘기가 여러 차례 들렸지만 양 사 모두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특히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가 눈앞에 놓인 기업결합 처리만으로도 벅찬 만큼 당분간 M&A 이슈가 불거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견해도 ‘소문’으로 끝날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일각에서는 통신사들이 유선방송의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전략적으로 숨 고르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는다. 과기정통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19년 상반기 가입자 수 조사·검증 및 시장점유율 산정 결과’에 따르면 월별로 2017년 11월 IPTV 가입자 수가 SO 가입자 수를 처음으로 역전한 뒤 지난 6월 말 그 격차가 무려 268만명까지 벌어졌다. SO들이 가입자를 점점 뺏기는 상황에서 시간이 지날 수록 기업 가치가 하락하고, 인수가격도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실제 CJ헬로는 2016년 SK텔레콤이 인수를 추진하던 당시 지분 53% 가량이 1조원대로 평가됐지만, 지난해 LG유플러스에 지분 50%+1주가 8,000억원에 팔렸다.
다만 가입자 한 명이 아쉬운 통신사로서는 M&A를 차일피일 미루다 경쟁사에 ‘1강’ 자리를 뺏기는 경우가 더 최악의 상황이어서 언제까지 뒷짐만 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SO들에게도 상황을 통제할 힘이 있다는 것인데, 이들이 적극적으로 매각에 나설 경우 잠잠하던 시장이 한순간에 달아오를 수 있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치열한 경쟁 때문에 유료방송 가입자 1명을 늘리는 데도 많은 노력과 돈이 들어간다”며 “단숨에 시장을 키울 수 있는 M&A는 언제나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