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이‘돼지들에게’개정증보판 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투 운동의 불씨를 던진 최영미(58) 시인이 자신의 시집 ‘돼지들에게’에 등장하는 ‘돼지’가 어떤 인물인지 밝혔다. 실명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구체적 경험을 통해 해당 인물의 일부 신상을 설명했다. 또한 1987년 대통령 선거 후보 캠프에서 공공연했던 성추문을 고발하기도 했다.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한 카페에서 최 시인의 시집 ‘돼지들에게’ 개정증보판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지난 15년 동안 ‘돼지들에게’에 등장하는 수많은 ‘돼지’들이 실체에 대해 무수한 논란이 일어왔고, 최 시인은 입을 열었다.
그는 “2005년 그 전 쯤에 한 문화예술계 사람을 만났고, 그가 ‘돼지들에게’의 모델”이라고 폭로하면서 “문화예술계에서 권력이 있고, 한 자리를 차지한 인사다. 기사가 딸린 차를 타고 온 사람”등으로 묘사했다.
이어 “성희롱까지는 아니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이 담긴 말을 했고,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나를) 불러내고서 뭔가 기대하는 듯한, 나한테 진주를 기대하는 듯한…”이라며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마라’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그 사람은 이런 시를 쓰도록 동기를 준 사람이고, 첫 문장을 쓰게 한 사람”이라고 덧붙이면서 언론 보도는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이날 최 시인은 1987년 대통령 선거 기간 진보 단일 후보였던 백기완 후보 캠프에서 활동하며 당한 성추행도 폭로했다. 그는 “선거철 24시간 합숙하며 겪은 일”이라며 “그때 당한 성추행은 말도 못한다. 한방에 스무명씩 겹쳐 자는데 굉장히 불쾌하게 옷 속에 손이 들어왔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뿐만 아니라 그 단체 안에서 심각한 성폭력이 있었다. “학생 출신 외에 노동자 출신 등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그때 다 봤고 회의를 느꼈다”면서 “피해 사실을 여자 선배에게 상담했으나 ‘네가 운동을 계속하려면 이것보다 더 심한 일도 참아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털어놓았다.
한편 최 시인은 지난 2017년 시 ‘괴물’을 통해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폭로하며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의 불씨를 던졌다. 이 사건으로 고 시인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으나 지난해 11월 2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고 시인이 상고를 포기하며 3년여간의 법정 다툼은 마무리됐다. /안정은기자 seyo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