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박근혜 정부 시절 보수단체를 불법 지원한 의혹(화이트리스트)으로 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강요죄 혐의를 다시 재판하라고 결정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13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 등의 상고심에서 일부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은 지난 2014부터 2016년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압박해 33개 친정부 성향 보수단체에 69억원을 지원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대법원은 쟁점이 됐던 직권남용죄는 원심과 같이 유죄로 판단했지만, 강요죄를 유죄로 본 부분에는 잘못이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강요죄를 유죄로 본 2심에 대해 “피고인들의 자금지원 요구가 강요죄가 성립될 만큼의 협박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 취지로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선 “자금지원 요구는 직권을 남용한 것에 해당하고 이로 인해 전경련 부회장의 자금지원은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한다”며 2심과 같이 유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30일 문화계 비판 인사들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블랙리스트)로 기소된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의 상고심도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직권남용 혐의는 성립한다고 판단하면서도 적용 범위를 좁게 해석해 직권남용죄 일부를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앞서 1심과 2심은 김 전 실장에 대해 징역 1년 6월을, 조 전 수석에 대해서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만 직권남용죄를 인정하지 않았던 1심과 달리 2심은 직권남용죄와 강요죄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정무수석실의 전경련에 대한 자금지원 요구가 전경련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강압적인 방법으로 이뤄졌다”며 “이로 인해 전경련은 시민단체에 대해 자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자율적인 판단과 심사 기회를 사실상 박탈당했다”고 지적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