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세계 경제의 안정을 도모해야 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세계은행(World Bank) 등 국제기구들은 임무에 실패했다. 세계 경제안정에 집중하기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이익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세계화는 개발도상국의 경제와 빈민층을 더욱 황폐화시켰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지난 2002년 출간한 책 ‘세계화와 그 불만’에 이 같은 내용을 담았다. 출간 당시 미국 중심의 세계화, 국제기구 뒤 숨은 권력을 신랄하게 비판해 집중을 받은 이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그로부터 15년, 그 사이의 세계 경제 변화를 추가하고 보완한 개정증보판이 2017년 미국에서 발간됐고, 이제야 한국 독자들을 찾아왔다. ‘서문’과 ‘1부-세계화와 새로운 불만’, 70여 쪽의 ‘개정증보판 후기’까지 새로 추가된 책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한층 더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세계화 논쟁에 불을 지폈다. 저자인 스티글리츠는 미국 빌 클린턴 전 행정부와 세계은행 등에서 일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한 저명한 경제학자다.
저자는 트럼프 정권이 출범한 이래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의 달라진 위상, 중국과 미국의 첨예한 대립 등 달라진 국제 정세를 개정증보판에 반영했다. 그러면서 저자는 세계화의 여파가 이제 개발도상국만의 피해를 넘어 선진국으로 이어졌다고 강조한다. 그는 “선진국 인구 중 많은 사람이 잘 지내고 있지 않다”며, 미국에서도 중간층이 사라지는 가운데 빈곤층의 수는 늘고 있고, 상위 0.1%만 잘 살고 있다고 꼬집는다.
그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소개하며 “트럼프는 더 ‘균형 잃은 세계화’를 요구하고 있다. 세계는 그의 시도들 때문에 훨씬 더 나빠질 것”이라고 비판한다. “트럼프는 새로운 보호무역주의를 미국이 ‘미국 우선주의’를 추구하도록 빠르게 밀어붙였고, 그것들을 이행하는 것이 불편할 때면 국제적 약속들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트럼프가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미국은 세계적 영향력을 잃을 것이며 미국인들의 생활 수준은 저하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책 제목이 ‘세계화와 그 불만’이라고 해서 저자가 세계화의 부정적인 면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세계화 덕분에 중국에서만 8억 명이 넘는 이들이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유엔은 분쟁을 줄이고 어린이와 난민을 보호하는데 성공했다고 말한다. ‘세계화 비판론자’라기보다는 ‘세계화 개선론자’인 스티글리츠는 우리가 세계화를 개선할 수 있고, 반드시 개선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세계화의 변화와 개선 방향은 무엇일까. 그는 “세계화가 당초 취지대로 작동하게끔 만드는 데 필요한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지배구조의 변화”라며 “IMF와 세계은행은 투표권의 변화가 필요하며, 통상장관들의 목소리만 판을 치고 있는 WTO와 재무장관들의 목소리만 판을 치는 IMF·세계은행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티글리츠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민주적인 절차를 바탕으로 한 더 나은 정책을 통해 모두가 수혜를 받는 최선의 결과를 얻는 것이다.
그는 또 “상생하는 세계화, 대안적인 세계화는 더 공정하고 효율적인 세계 경제규칙의 개선·제정과 세계화의 개혁·관리를 통해 가능하다”며, 세계화가 모두가 잘살기 위한 수단이라는 재인식, 국제 경제기구들의 미국 의존과 지배구조 개선 등을 제시한다.
책은 지금 세계화는 어디쯤 와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보통의 존재들을 위한 세계화의 정책과 방향은 무엇인지 해답을 찾는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한다. 특히 역자의 말처럼 전 세계에서 제조업 부문의 절대적인 일자리 수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경제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선 국가는 서비스 기반 경제로의 전환을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는 스티글리츠의 경고 섞인 충고는 여전히 혁신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린다. 2만9,000원.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