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이 14일 시작된 토론토 구단 스프링캠프에서 수많은 취재진의 관심 속에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펜 투구에 앞서 모자를 고쳐 쓰는 류현진. /연합뉴스
14일(이하 한국시간)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스프링캠프의 가장 큰 뉴스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선수들의 ‘사인 훔치기’ 관련 사과였다. 한 달 전 MLB 사무국 조사 결과 휴스턴은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2017~2018년 구장 가운데 펜스에 카메라를 설치해 상대 팀 투수와 포수 간의 사인을 훔치고 실시간으로 공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년간 신인 드래프트 지명권을 뺏기고 벌금 500만달러를 내야 하는 휴스턴은 이날 플로리다 스프링캠프 시작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판선수들의 입을 통해 “잘못된 행동”이었다며 사과했다.
몇 시간 뒤 플로리다 더니든의 TD볼파크에서는 야구인생의 새 연대기를 여는 류현진(33)이 수많은 카메라 앞에 섰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구단의 2020 스프링캠프 첫날, 이적생 류현진은 불펜 피칭을 마친 뒤 신고식처럼 취재진 앞에서 포부를 밝혔다. 인터뷰를 한국 매체와 외신으로 나눠 진행해야 할 만큼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캐나다 방송 스포츠넷은 “류현진의 움직임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취재진은 규모 면에서 휴스턴 캠프에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할리우드 같은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찰리 몬토요 토론토 감독도 “8년 전 마쓰이 히데키(일본의 전설적인 타자) 때문에 마이너리그에 일본 미디어가 몰려들었던 일이 기억난다. 하지만 MLB 스프링캠프에 이렇게 많은 취재진이 몰린 것은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류현진은 이날을 시작으로 야구인생의 세 번째 챕터에 공식적으로 발을 내디뎠다. KBO 리그 한화 이글스와 MLB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7년씩을 보낸 그는 토론토와 4년 8,000만달러(약 946억원)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의 첫 시즌을 맞는다. 다저스 시절 클레이턴 커쇼라는 전국구 스타 뒤에서 주로 2선발 또는 3선발로 활약했던 류현진은 토론토에서는 계약 때부터 에이스 대접을 받고 있다. 토론토 구단 역사상 세 번째로 높은 몸값을 보장받은 그의 이름 앞에는 늘 ‘뉴 에이스’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런 분위기를 잘 아는 류현진의 캠프 키워드는 ‘천천히’다. 새 환경에 적응하고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주변의 기대를 의식해 서두르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류현진은 “(여기 온 지) 이제 1주일 됐는데 천천히 해나가고 있다. (팀 훈련이 공식적으로 시작돼) 동료들과 얘기할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천천히 알아갈 생각”이라며 “동료들이 다들 반갑게 맞아줬다. 이 팀의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구 훈련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많은 것을 할 생각은 없다. 천천히 투구 수와 이닝 수를 늘려나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이스라는 수식어가 붙는 데 대해 류현진은 “에이스라 하기는 좀 그렇다. 새로운 팀에 좋은 대우를 받고 왔지만 그렇다고 바로 막 보여준다는 생각보다는 선수들이랑 친해지면서 경기를 재밌게 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경기적으로 에이스 역할이라든가 그런 것을 아직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에이스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에이스라면 그래도 많은 경기에 나가서 팀이 이길 수 있게 만드는 게 첫 번째”라는 말로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날 33개의 불펜 투구로 모든 구종을 시험한 류현진은 16일 두 번째 불펜 투구로 어깨를 달굴 예정이다. 현재 몸 상태는 “지난해 이맘때보다 괜찮다”고 한다. 류현진은 지난해 29경기에서 182⅔이닝을 던져 14승5패를 올렸다. 평균자책점 2.32로 MLB 전체 1위를 차지했고 9이닝당 볼넷 허용(1.18개)도 가장 적었다. 류현진은 오는 3월27일 오전4시37분 토론토 로저스센터에서 열릴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새 시즌 개막전 선발 등판이 확실시된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