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오른쪽 두번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한 후 ‘민주당은 빼고’ 칼럼 고발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나가고 있다./연합뉴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제21조)
우리 헌법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칼럼을 통해 자신들을 비판한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와 한 언론사를 고발했다 취하하면서 후폭풍이 만만찮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부랴부랴 유감을 표시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현 정권 들어 반복된 민주주의 훼손의 결정판이라는 점에서 비판 여론은 더욱 들끓고 있다.
서경 펠로(자문단)들은 한국 사회가 어렵게 쌓아온 헌법상 절차적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촛불혁명’을 통해 집권했다는 이유로 정통성을 자부하는 현 정부가 표현의 자유, 법치주의 등 헌법정신을 오히려 위배하면서 국론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자신들에 대한 비판에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선거를 앞둔 집권당으로서 올바른 행동은 아니다”라며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우창록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이후 우리 사회의 반목과 갈등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며 “법치주의의 후퇴는 민주주의 후퇴로 이어지고 결국 우리 사회 전반의 반목과 분열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전주지검 차장검사를 지낸 김진숙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 역시 “전체적인 칼럼의 주제는 유권자들이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투표를 잘하자는 취지인데 그 논거가 민주당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고 공직선거법 위반이라 하는 것은 법의 탈을 뒤집어쓴 정치보복”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헌법정신 후퇴라는 측면에서도 일제히 쓴소리를 쏟아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데 선거를 앞두고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법으로 억압하려는 오만한 작태”라며 “민주주의의 기본은 상대방과 나 자신이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우리 헌법정신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부문장변호사도 “대량학살이나 반인륜적인 내용이 아니라면 표현을 가지고 법정으로 끌고 가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법치주의 논란이 결국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것이라는 평가도 내놓았다. 언론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됐던 유신정권 시절인 1975년에는 이른바 ‘국가모독죄’를 만들었다. 이를 근거로 집권세력은 대통령 등 국가기관을 비방하거나 그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경우 형사처벌을 했다. 하지만 이 법은 6월 민주화운동 이후인 1988년 폐지됐고 당시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세력이 현 정권과 여당에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는 지적이다.
특히 현 정부가 절차적 정당성 확보라는 민주주의의 근본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현 정권을 수사하던 검찰 인사에 대한 보복인사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을 담은 공소장의 국회 제출 거부 등에서 권력의 오만한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김현 변호사는 “정권 편을 들면 우리 사람이고 반대하면 적으로 모는 작금의 행태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도 보기 어려웠다”며 “법무부의 공소장 비공개 논란과 임 교수가 쓴 칼럼에 대한 고소 사태를 보면 현 정부는 정권 연장을 헌법정신보다 우선하는 것 같은데 이는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헌법정신을 퇴행시키는 처사”라고 말했다.
또 민주당이 야당 시절 보수정권을 향해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는데 여당으로 입장이 바뀌면서 ‘내로남불’ 행태를 보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김 파트너변호사는 “현 집권당의 검찰개혁은 대통령 측근을 수사한 데 대한 정치적 보복으로 그 정당성을 잃고 있는 폭거”라며 “야당 수사는 지지하고 청와대 수사는 못 하게 할 의도로 과거 검찰의 문제점으로 지적받은 개혁과제를 교묘히 물타기한 내로남불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유원규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는 “여태 정권에서 검찰이 중립을 지켜줘야 한다고 얘기하다 정권을 겨냥한 수사가 진행되자 순치하려는 모습은 내로남불인 면이 없지 않다”며 “다만 검찰도 자기 권한을 남용하지 않는 등 양쪽 모두 자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현호·임지훈·이지성·조권형기자 h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