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가 16일 호주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애들레이드=EPA연합뉴스
박인비(32·KB금융그룹)는 골프인생에서 ‘정점’이 여럿인 선수다. 200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US 여자오픈 최연소 우승 기록(만 19세11개월)을 세운 뒤 3년간 슬럼프를 겪었으나 이후 무섭게 트로피 수집에 나섰다. 한 시즌 6승을 쓸어담은 2013년에는 메이저대회 3개 대회 연속 제패라는 63년 만의 대기록도 썼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15년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으로 4개 메이저를 석권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 위업을 달성하면서 이듬해 LPG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2016년 여름에는 심각한 손가락 부상을 딛고 2위와 5타 차 압승으로 올림픽 금메달의 감동을 선사했다. 박인비는 멈추지 않았다. 2017년 부상 복귀 두 번째 대회에서 LPGA 투어 통산 18승째를 거두며 건재를 과시했다. 19승 이후 아홉수에 걸린 듯 23개월이나 이어진 우승 가뭄은 올림픽 2회 연속 출전이라는 확실한 목표로 이겨냈다.
박인비가 LPGA 투어 20승(메이저 7승)을 채우며 또 한 번의 정점을 보탰다. 한국 선수로는 박세리(은퇴·25승)에 이어 두 번째이고 LPGA 투어 역대 28번째다. 2008년 첫 우승 뒤 1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박인비는 16일 호주 로열 애들레이드GC(파73)에서 끝난 호주여자오픈에서 14언더파로 우승했다. 2위 에이미 올슨(미국)을 3타 차로 제치고 우승상금 19만5,000달러(약 2억3,000만원)를 가져갔다. 지난해 말 LPGA 투어 홈페이지 등으로부터 10년간 최고 여자 선수로 뽑혔던 박인비는 새로운 10년도 우승으로 열어젖혔다.
3타 차 단독 선두로 4라운드를 출발한 박인비는 첫 홀 보기로 출발은 조금 불안했지만 3·4번홀(파4) 연속 버디로 다시 달아났다. 전반을 5타 차 선두로 통과했다. 14번홀(파4) 보기로 2타 차까지 쫓긴 15번홀(파5) 보기 위기에서는 멋진 벙커 샷으로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3홀 남기고 3타 차로 맞은 어려운 16번홀(파3)에서 보기를 피하지 못했지만 17번홀(파5) 1.5m 버디로 쐐기를 박았다. 버디 3개와 보기 4개를 적은 가운데 고비마다 쏙쏙 들어간 먼 거리 파 퍼트가 우승의 열쇠였다. 한 달 전 개막전에서 연장 준우승한 아쉬움도 깨끗이 씻었다. 박인비는 19승과 20승 사이 준우승만 다섯 차례 했다.
20승은 한국 골프에 역사적인 숫자지만 박인비에게는 더 큰 목표를 위한 과정의 하나다. 올여름 도쿄 올림픽 출전을 위해 반드시 우승이 필요했던 박인비는 일단 도쿄행을 위한 든든한 발판 하나를 만들어놓은 셈이다. 박인비는 이 대회 전 세계랭킹이 17위로 한국 선수 중 여섯째였다. 올림픽에 나가려면 6월까지 15위 안에 들면서 한국 선수 중 넷째 안에 있어야 한다. 예년보다 훨씬 일찍 시즌을 시작하면서 호주여자오픈에 8년 만에 출전한 것도 올림픽 티켓 때문이었다. ‘추격자’ 박인비는 가장 좋은 타이밍에 우승을 터뜨린 셈이다. 이 대회 뒤 아시아에서 치르려던 3개 대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최근 취소되면서 조급해질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올 시즌 4개 출전 대회 만에 첫 승을 신고한 박인비는 다음 대회인 한 달 뒤 파운더스컵에서 올림픽 2연패라는 또 하나의 정점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는다. 파운더스컵은 박인비가 19승째를 올린 대회다. 그는 “한국에 ‘아홉수’라는 말이 있는데 호주가 행운의 장소가 됐다”며 “국가대표가 되기는 쉽지 않다. 오늘 좋은 결과가 나왔지만 더 순위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단독 2위에서 박인비와 같은 조로 경기한 조아연은 4타를 잃고 8언더파 공동 6위로 마쳤다. 이미향도 6위다. 한국 군단은 지난주 박희영에 이어 2주 연속 우승해 4개 대회에서 승률 50%를 기록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