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범(왼쪽 두 번째) 서울교통공사 노조위원장이 지난해 10월15일 서울 성동구 서울교통공사 본사에서 열린 임·단협 본교섭에서 임금피크제 폐지, 안전인력 확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행정안전부가 지방공기업평가원에 의뢰해 작성한 ‘임금피크제 실태조사 및 효율적 운영방안’ 자료를 보면 지난 2016년 도입된 임금피크제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젊은 세대의 실업률이 급증하면서 청년 일자리 창출의 대안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으나 청년층 고용 효과는 갈수록 미미해지는 반면 재원 부족에 따른 총인건비 상승분 잠식으로 직원들의 불만은 격화되는 모양새다.
54% “임피제 불구 신규채용 부담 감당못해”
본지가 16일 확보한 이번 조사에 따르면 2019년 9월 기준 132개 기관 중 71개(53.8%)는 임금피크제 대상자의 인건비 절감액으로 신규채용자의 급여를 충당하지 못해 총인건비 상승분을 끌어다 쓰고 있었다. 당초 취지와 달리 재원부족 문제가 심화되면서 직원들이 인건비 상승분의 혜택을 덜 받게 된 셈이다. A공사의 경우 2018년에는 임금피크제로 인한 절감액(178억600만원)으로 신규채용 인원에 대한 인건비(178억원)를 감당할 수 있었으나 지난해에는 42억4,700만원이 모자랐다. B공단은 이미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2억3,900만원, 8억7,300만원이 부족해 불가피하게 총인건비 상승분의 일부를 가져다 썼다. 기관 유형별로는 도시철도(67%)·환경시설공단(62%)·도시개발(57%) 등의 순으로 재원 부족 문제를 겪는 기관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건비 부족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활용한 신규채용 규모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지방 공기업의 경우 2016년 800명에서 올해 75명으로 93% 이상 급감했다. 기획재정부가 관리하는 국가 공공기관 역시 2016년 4,282명에서 2018년 1,386명으로 축소됐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차만 쌓이면 급여가 올라가는 호봉제를 유지하는 대신 일종의 ‘임시처방’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라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공공 부문에도 성과·책임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는 직무급제를 전면 도입해 합리적인 임금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기관별 신규채용 차등화 검토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부작용이 심해지면서 정부는 국가 공공기관처럼 지방 공기업도 기관별로 신규채용 목표 설정 방식에 차등을 두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공기업들은 임금피크제 대상자의 증가에 따라 인건비 절감액으로 충당할 수 있는 신규채용 목표치를 제시하도록 돼 있다. 이때 국가 공공기관은 신입 직원의 연봉을 고령자 연봉으로 나눈 비율에 따라 신규채용 목표 수치에서 10~50%를 감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행안부는 임금 부담의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지방 공기업도 신입·고령자 연봉 비율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적정한 감축 비율을 도출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노조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최저임금의 150%를 넘는 임금을 받는 임금피크제 대상자의 급여가 최저임금의 150%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정부는 ‘임금피크제 대상자에게 지급하는 명예퇴직수당을 올려달라’는 노동계의 주장에 대해서는 재원 부담과 형평성 문제를 고려할 때 수용이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정부는 이번 연구결과 토대로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의 의견수렴을 거쳐 올 상반기 안에 ‘지방 공기업 임금피크제 추가 운영지침’을 확정한 후 시행에 돌입하기로 했다. /세종=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